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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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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토요일, 자려고 일찍 누웠는데 몸이 간지럽다. 긁적긁적. 소양증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잠결에 들린 ‘위잉’ 소리가 모기였나? 물렸나 싶어서 불을 켰더니 두 방 흔적이 남아있다. 그때가 12시. 잡으려고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또 잠들었는데 또 물렸다. 2시에 깨고. 또 물려서 5시에 깼다. 푹 자고 싶을 때 꼭 방해하더라. 모기 나한테 왜 그랴.. 나 너무 피곤해.. . 33주 나무는 부지런히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내가 모기랑 싸움을 하는 그 새벽에도 쿵쿵쿵 파닥파닥. 나중에 이 움직임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 것 같아 더 집중해서 느껴보려고 했다. 어제 나무가 딸꾹질 한다고 아빠 엄마한테 알려드렸다. 아빠 손을 내 배에 올리고 나무를 느끼게 해드렸는데, 나무보다는 ‘배가 많이 무겁겠다’, ‘조심하고 푸욱 쉬어라’며 걱정을 하신다. 꼬물꼬물 외손주보다는 딸이 먼저인가보다. 괜히 여기서 또 뭉클. .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 남편이랑 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러 갔고 나는 튼살크림을 바르고 간식을 챙겨먹었다. 등산과 시장에 다녀오신 부모님. 내가 좋아하는 밀감 한 봉지, 빵 한 봉지를 건네신다. 엄마는 새벽 일찍 일어나 반찬을 하시고, 그 뒤로도 점심을 차리시고 정리하시고, 빨래와 청소, 마늘을 갈고 차를 우리신다. 하루종일 바쁘고 부지런하신 엄마를 보면 늘 대단한 것 같다. 나는 그저 낮잠자고 놀았는데.. . 엄마는 라면이 드시고 싶댔다. 무파마 두 개를 꺼내 파랑 달걀 두 개를 숑 넣었다. 둘이서 밥도 말아 먹고 신김치도 신나게 먹는다. 후식은 카라멜과 땅콩 과자. 틈틈이 마시는 작두콩차. 저녁 8시, 팔짱을 끼고 걸어서 동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러 갔다. 그새 아빠는 짐꾼역할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먹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하는데 배가 불러서 고르지 못하는 나는 겨우 자갈치 하나를 잡는다. 커피 우유를 들자마자 엄마는 바로 내 손에 우유를 낚아챘다. 그건 안 된다고. 크크크. 초코우유로 타협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 아빠는 과일과 고구마를, 나는 밀감 네 개를 까먹고 누워있다. 평화로운 토요일. 남편만 있으면 아주아주 최고의 주말일 텐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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