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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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수요일,
밤만 되면 고장이 나는 것 같은 허리.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는데 으스러질 것만 같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옆으로 돌아 눕다가 끙끙 앓는 소리에 남편이 허리를 주물러준다. 꾹꾹꾹. 이제는 목구멍이 뜨거워지는데.. 아픈 나랑은 다르게 요동을 치는 나무는 밤새 깨어있는 듯했다. 한 번은 억!소리가 날 정도로 콩. 우리 아기 안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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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을 챙겨주고 빼빼로 하나를 스윽 내밀었다. ‘사랑해요’가 적혀있는 걸로. 자기는 준비를 못 했다고 머쓱해하길래 ‘여보는 내게 빼빼로 같은 존재야’라고 말하는 나와 ‘내가 빼빼로같이 생겼나’라고 대답하는 남편. 아침부터 낄낄낄. 그것보다 어젯밤에 쌍꺼풀이 생겨 눈에 힘준 그에게 ‘응삼이’라고 놀린 게 생각나서 깔깔깔 웃고 말았다. 가끔 둘 만의 개그코드가, 대화코드가 새삼 중요하다는 걸 깨닫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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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는 삶은 달걀이랑 두유 하나.
누워서 누드빼빼로를 냠냠 먹었다. 눕방먹방 이숭이. 나무랑 놀다가 잠든 나는 엄마 전화에 정신을 차린다. 매일 내 상태를 물어보는 엄마. 작게 태어난 내가 걱정돼, 나무가 2kg이 넘었을 때 ‘엄마보다 크다’며 또다른 위안을 삼던 우리엄마. 그시절의 엄마, 지금의 엄마는 언제나 크고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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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밀감이 도착했다.
그 자리에서 4개를 까먹고는 괜히 막달에 나와 아기가 커질까 봐 신경쓰면서도 결국은 먹고마는 스타일. 손끝 노래질 때까지 신나게 먹어야지. 새콤달콤 밀감이 참 좋더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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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퇴근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부터 부랴부랴 밥을 데우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믿었던 불고기는 상해서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메뉴는 순두부찌개랑 달걀참치전. 애호박, 양파를 잘게 썰고 참치 한캔, 달걀 하나랑 소금, 후추 약간, 부침가루만 있으면 반죽 완성. 동시에 여러가지를 하다보니 조금 태운 참치전이었지만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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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에 들려있던 흰 꾸러미.
정체는 윗집 이모가 주신 사과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내가 임신한 걸 아시고는 언제 출산하냐고 물어보셨다고 했다. 그러자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건네주신 사과와 좋은 말들. 안 그래도 사과 살려고 했는데 기똥찬 타이밍에 과일이 생겼다. 감사합니다. 홍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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