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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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목요일,
굿모닝 에브리원.
남편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불을 켠다. 약간 찡그린 얼굴로 안경알을 닦아주고 부엌입성. 도넛과 삶은 달걀, 사과랑 두유, 요구르트를 꺼냈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는 사각사각 사과를 깎는다. 몇 조각은 내 입으로 쇽. 선물받은 사과는 새빨갛고 이쁜데다 맛까지 있다. 감사하게 시작하는 하루. 여보도, 나무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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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굴딩굴 잠을 자고 일어났다.
‘김밥 사 갈까’는 연락에 바로 오케이. 참치김밥, 소고기김밥을 사 왔고 나는 오동통면 하나를 끓였다. 외근을 다녀온 남편이랑 같이 먹는 점심은 왠지 모르게 더 맛있다. 낮에 보니 더 반갑고 그렇네. 그는 다시 회사로 갔고 배웅을 할 겸 아파트 주변을 걸었다.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낙엽들 사이로 뚜벅뚜벅. 노랑 빨강 초록 주황 알록달록 이파리들이 춤을 추듯 내려온다. 나중에는 나무랑 같이 다닐 상상을 하면 표현하기 힘든 몽글몽글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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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9.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간이 더 늘어날지, 줄어들지는 아무도 모르는 출산의 영역. 빨리 준비해야지. 그렇게 해서 시작된 세탁조 청소. 신생아 손수건은 종류도 용도도 다양해서 여전히 헷갈리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습득한다. 응? 3번을 세탁, 건조하라고? 며칠이 걸릴랑가... 세탁기도 돌렸고 중고로 받은 유모차도 업체에 맡겼으니 한숨이나 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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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은 5시부터 바빠졌다.
빨래가 다 됐다는 소리가 들리고 30여장의 손수건을 팡팡 털어서 너는데도 시간이랑 힘이 꽤 들었다. 씻고 청소기도 돌려야 하는데.. 저녁도 해야하는데 오메메. 손수건 하나 널었을 뿐인데 아기가 있는 집이 된 것 같다. 며칠 전에 조립한 아기침대를 보며 찡했다는 남편 말이 계속 맴돈다. 우리는 주변에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는 것들과 머지않아 ‘아기가 있는 삶’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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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어제 그대로.
순두부찌개랑 달걀참치전. 애호박이 없어서 찌개에는 버섯을 많이, 참치전에는 양파랑 당근을 넣었다. 달달한 맛과 바삭한 식감이 좋은 참치전을 먹으면서 하루 일과를 나눈다. 바쁘게 보낸 서로에게 격려를, 고마움을 아끼지 않는 우리. 요즘 계속 설거지를 해주는 남편 덕분에 편하게 잘 쉬고 있다. 간식으로 사과랑 밀감 입에 쇽 넣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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