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6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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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화요일,
일찍 누웠지만 나는 자다깨다 반복했고 남편은 꽤 늦게까지 잠들지 못 했다. 저녁에 보일러를 괜히 켰나.. 더워서 깨고, 자기 전에 물을 괜히 마셨나..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깨고. 폰 시계를 여러 번 들여다 보면서 시간이 쭉쭉 흘러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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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50분에 울린 알람.
남편은 경기도 출장이 있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동행하는 분이랑 같이 나눠 먹으라고 귤 한 봉지랑 물 한 병씩을 챙겨줬다.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신나게 손을 흔든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냥 몽글몽글. 장거리 출장을 가야하는(회사를 가는) 그남자의 책임감과 무게, 외벌이 그리고 곧 태어날 아가, 세 명이 살 우리 집. 고맙고 고마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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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붙이고 일어나 세탁기를 돌린다.
손수건, 담요와 인형. 건조대에 드러누워 있는 인형은 오늘의 귀여움 당첨!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건을 검색하면서 하나씩 주문을 했다. 점심을 간단하게 달걀이랑 두유랑 먹을까 하다가 갑자기 김치랑 밥이 먹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비엔나 소시지까지 구워서 냠냠냠. 초코우유로 입가심을 하니 세상이 참 달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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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삑삑, 남편이 왔다.
나무랑 나는 열정적으로 반겨준다. 피곤할 테니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입욕제를 넣어둔다. 회장님 모시듯 깍듯하게 대했다. 혹시 불편한 건 없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굽신굽신 캬캬캬. 밀감도 까먹고 피로를 푸는 남편이 편해보여서, 앞으로도 종종, 아기가 있을 때도 그런 시간을 만들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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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배가 고프지 않았던 우리는 밖에 나가서 먹기로 했다. 산책도 할겸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어묵이랑 군만두를 주문했다. 추운 날 먹어야 더 맛있는 꼬불꼬불 어묵은 오늘도 맛있다? 혼자서 어묵 세 개, 만두 두 개랑 국물 원샷. 돌아오는 길엔 벌컥벌컥 뭔가 마시고 싶어서 편의점에 가서 미에로화이바랑 빵 두 개를 집었다. 배가 덜 부른가 봐? 바스락바스락 낙엽을 밟던 길은 어느새 빗방울로 촉촉해진 가을밤이었다. 우리는 영화 ‘클래식’처럼 외투를 덮어썼지만 현실은 눈 가리고 얼굴 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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