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0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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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금요일,
새벽에 처음 느껴본 통증.
생리통처럼 은근히 배가 아파왔다. 배를콕콕콕 찌르는 묘하게 기분 나쁜 그 고통이 오랜만이다. 37주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고 해야 하나. 검색을 했더니 이게 ‘가진통’이라고 한다. 길게는 몇 주동안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가진통에서 진통으로 바로 넘어가기도 한다고 했다. 결국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으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만나자. 나무는 밤새 명치 쪽에서, 옆구리에서, 아랫배에서 골고루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나무야 잘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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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있었던 증상을 얘기했더니 둘 다 괜히 두근두근거린다. 예정일로 치면 3주 밖에 안 남았으니 그도 그럴 수밖에. 오늘은 과일 대신에 감말랭이랑 삶은 달걀, 도넛, 요구르트랑 두유를 챙겨줬다. 주문한 사과가 얼른 오면 또 맛나게 깎아주겠어요. 잘 다녀오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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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남은 반찬들을 꺼내고 비엔나를 구웠다. 내가 좋아하는 소시지 반찬. 할머니가 되어서도 안 질릴 것 같은데 나는. 흐흐. 며칠 째 보다 끊고 보다 끊은 영화는 오늘도 스톱. 비비빅을 먹고 세탁기를 돌린다. 아기옷이 널려 있는 우리집. 신생아 양말은 너무 쪼그매서 볼 때마다 심장이 콩콩콩. 나중에 의자에 양말 신겨줘야지. 먼지를 털어내고, 담요와 이불 빨래를 끝냈다. 부엌장에 있는 필요없는 것들과 유통기한 지난 것들을 모조리 다 버리고 비우기를 반복. 내일은 냉동실을 정리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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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주문했더니 상자가 쌓인다.
편안하게 집에서 물건을 받고, 쓰레기를 버리고 반복. 한가득을 비우고 아파트 주변을 돌았다. ‘운동 많이 하셔야합니다’ 담당 선생님의 조언은 나를 걷게 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나무를 더 순탄?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걷고 또 걸었다. 하루 사이에 온도가 뚝 떨어져 겨울을 보내는 기분이, 뒤뚱뒤뚱 걷는 내 모습이, 차디찬 바람이 왠지 그리워질 것 같아 나무랑 같이 그 순간에 집중해본다. 그런데 지금 핀 진달래꽃 한 송이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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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퇴근 후에 통영에서 보낸 굴을 가지러 본가에 다녀왔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에 밥을 안치고 쿨쿨쿨. 비몽사몽 일어나 책을 읽고 있는데 문이 열린다. 목이랑 속이 뜨거워 밥은 패스하고 밀감을 먹는 나, 생굴을 맛있게 먹는 남편의 금요일 밥상. 그리고 드라마 ‘산후조리원 6화’. 따뜻한 보일러로 세차를 포기한 그남자의 선택. 따뜻한 게 좋은 어느 날, 나무의 37주 시작. 이제 언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막달 아가야의 세계. 두근두근 콩콩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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