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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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토요일,
11월 21일이라고 쓰면서도 믿기지 않는 날짜 감각.
11월도 끝자락을 향해 달려간다. 올해는 생각지도 못한 대역병의 발발로 너도 나도 힘든 시기를 보냈고, ‘임신’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우리. 엊그제 카운트다운을 외친 것 같은데 겨울이라니, 11월과 12월이 가까워지다니, 달력도 몇 장 안 남았다니.. 내가 곧 아기를 낳다니..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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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쯤 일어난 우리는 세탁기부터 잠을 깨운다.
남편과 함께 작디 작은 아기 내복과 옷을 개었다. 손바닥만한 인형옷같은 게 나무옷이라니 하찮고 가소로운데 그 또한 귀여워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방 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두유랑 삶은 달걀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다. 어젯밤에 먹고 싶은 것들을 주우욱 나열하던 나는 배고픔에 뭐라도 입에 쇽쇽 넣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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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여유롭게 외출하는 시간.
심부름을 갔다가 시장에 들렀다. 깻잎과 버섯만 보면 사고싶어지는 이상한 물욕 현상. 다행히 필요한 야채와 감만 샀다. 이제 ‘얼마 안 남았겠다’며 떨리냐고 물어보는 사장님, 그 옆에서 ‘몸조리 잘 해야해요. 그때 제대로 못하면 만병을 얻어요’하면서 걱정과 힘을 실어주는 손님 이모. 동네빵집에서도 사장님네 식구들이 우리에게 ‘파이팅’을 외쳐주시기도 했다. 별 생각없이 나갔다가 ‘비장함’을 얻고 왔다. 그리고 남편에게 했던 말, ‘나 이기지는 못 해도 지지는 않을 거야’. 뭐래는 거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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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순서는 커피였는데 철물점으로 향했다.
다음 코스는 칼국수가게.. 조개와 해물이 많은 칼국수를 호로록 마시고, 세탁망과 호떡 3장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리저리 볼일을 보고 먹는 것들을 손에 놓치지 않는다. 나 왜이렇게 먹고 싶은 게 많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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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시원하게 깎은 남편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에너자이저였다. 아기침대에 바퀴를 달고 나는 그 옆에서 노동요 DJ. 아이스커피랑 빵을 먹고도 모자랐는지 통닭파티도 결국 열고 마는 열정의 토요일. 언제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우리의 자유시간을 위해, 영화를 보기로 했다. ‘유주얼 서스펙트’. 이래서 카이저 소제 카이저 소제 노래를 부르는구나. 오호, 모르고 본 반전에 입이 떡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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