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5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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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수요일, 새벽 1시 45분, 목이 뜨거워져서 잘 수가 없다. 불끄고 누웠을 때 음식물이 목구멍까지 찰랑찰랑거리는 것 같더니만 결국 단잠을 방해하고 말았다. 나의 평화로운 새벽을 위해 약을 뜯어 쫍쫍 빨아먹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생각도 하고, 잘 자고 있는 남편도 바라봤다가 다시 꿈나라로 향했다. 그의 평화도 바랐지만, 지진나는 꿈때문에 지쳤다고 했다. 아유. . 나는 어제 저녁에 먹었으니 남편 먹으라고 삼각김밥을 데워서 챙겨줬다. 갑자기 생긴 김밥 두 줄. 아침에 몇 개만 집어먹고 다시 잤다. 굉장히 든든하고 좋구먼. 점심에도 김밥을 먹고, 감 두 개를 깎아 먹었다. 차 한 잔도 마시면서 빨래를 하고 산후도우미 업체랑 상담도 했다. 부디 우리랑 잘 맞는 분이 오셨으면. . 박을 엎어놓은 듯 둥그런 배를 쓰다듬는다. 천천히 큼지막하게 움직이는 나무를 관찰하고 자주 이름을 불러본다. 얼마 남지 않은 ‘연결된’ 우리 사이를 생각하면, 더 자주 토닥토닥하고 더 자주 불러줘야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기를 품은 열 달, 잔잔한 콩콩에서 꿀렁꿀렁 움직임을 느끼던 그 감정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우리 두 사람의 아기라니. . 남편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엔 어제 오늘 계속 화단, 가로수 전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톱소리가 나더니 댕강 베어버린 나뭇가지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안 그래도 낙엽이 다 떨어졌는데 나뭇가지조차 다 날려버렸다. 휑해진 공간만큼 마음도 왜 이리 시린지. 불쌍해.. 산책도 할겸 근처 공원을 하염없이 걸었다. 갈색빛 공원을 돌고 또 돌고. 모두 다른 모습으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나무와 나뭇잎, 나뭇가지들을 실컷 구경했다. 다음에는 아기랑 계절을 느끼러 와야지. . 메뉴는 현미밥, 미역국 비엔나구이랑 밑반찬들. 남편이 올 시간에 맞춰서 보일러를 켜고 기다린다. 따뜻한 한끼를 차려줄 수 있어 감사한 날. 오늘도 우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맛있게 저녁을 먹는다. 빼빼로도 먹고 시간낭비도 하고, 정리도 하는 보통날의 밤. 마녀배달부 키키 음악을 듣는데 괜스레 찡-. 마음을 후벼파네 음악들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겁나는 미래, 마음을 다잡아야지. 괜찮을 거라고 할 수 있다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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