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_
_
12월 12일 토요일,
남편은 밤 세차를 떠났다.
내내 바빴던 그에게 필요한 시간이랄까. 반짝반짝 광내고 우린 내일 만납시당. 폰은 데이터백업을 하느라 만지지 못 하고, 대신 가슴을 풀어주기 위한 미션이 시작됐다. 3시간마다 마사지를 하고 유축기 사용하기. 단단해진 가슴은 그것도 모자라 열이 올라왔길래 아이스팩을 올려둔다. 옆으로 누울 수도 없는 아픔. 이 상태로 며칠을 보낼 걸 생각하니 겁이 나서 유축에 적극적인 이숭이가 됐다. 밤 9시, 12시, 3시, 6시, 9시. 유선이 뚫려야만 나의 통증도 줄어든다. 그렇게 해서 나온 소중한 몇 방울.
.
아직 수유를 시작한 것도 아닌데 벌써 지쳤나..
아침밥이 온 줄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졌다. 미역국 건더기만 먹으라던 관리사님 말씀이 생각나서 미역만 집어 먹는다. 여유롭게 씻고 수유콜을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씻으러 간 사이에 울리는 전화벨. 부랴부랴 내려갔지만 배고픈 나무는 분유를 반 쯤 먹었다고 한다. 젖 물리기 연습 실패. 대신 아기를 품에 안고 자는 모습만 봐도 행복이 철철 넘친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볼살 빵빵, 뾰족 자란 머리카락, 나만 느낄 수 있는 나무의 온기. 행복이었다.
.
방에 가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다.
이번에도 밥이 온 줄 모르고 잔다. 점심은 삼계탕. 먹고 기운내야지. 마사지 가기 전에 유축 한 번만 더 하고 가야지. 밤새 노력한 덕분에 가슴이 좀 풀렸다고 했다. 휴우. 꼬집듯이 따갑고 찌릿한 마사지가 끝나고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왔는데 카드키가 없어서 못 들어간다. 저녁밥이 올 때까지 복도에서 기다리다가 내 방으로 슝.
.
아침 일찍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고, 집에 와서도 남편은 바빴다. 아기침대를 마저 고치고 빨래 돌리기, 빨래 개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배출하기를 했는데 저녁이었다고 한다. 수유하러 간 사이에 국밥을 먹고 온다던 남편은 돌고 돌고 돌아 집에 가서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던데. 컵라면도 없어서 시리얼 한 그릇을 급하게 들이켜고 왔다고 한다. 오메.
.
창문 하나를 두고 나무 면회를 했다.
분명 자는 모습으로 인사를 했는데,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다. 아빠 온다고 깬거니. 우리 앞에서 다양한 표정을 지어주더니, 배냇짓도 엄청 많이 해서 마냥 사랑스럽다. 뭘 알고 웃는 건지. 비웃는 표정은 어디서 배운건지. 오늘도 참말로 귀엽네. 비록 저녁 수유연습도 실패했지만,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많이 연습해보자고 했다.
.
해피맨과 조리원에서 같이 보내는 토요일밤.
조용하던 방이 복작복작해졌다. 호박죽과 미역국, 순대와 밀감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 얘기의 끝엔 늘 나무가 있다. 봤던 사진 또 봐도 늘 새로운 우리 나무, 오늘도 잘 커줘서 고마워. 그리고 다시 유축 시작.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