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6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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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화요일,
고마워 나무야.
1시 전에 잠들어서 5시에 일어나다니. 결론은 우리랑 같이 침대에 자는 걸 좋아하는 걸로. (잠투정은 있지만) 나무가 잘 자서 우리가 잘 자고, 매일 밤마다 괴롭히던 피부트러블이 없어서 삶의 질이 올라간다. 피부과 약이 세긴 센가 봐. 하나도 안 간지럽네. 새벽에 두 남자들을 바라본다. 깊은 잠에 빠졌는지 새근새근 숨소리가 이 공간을 채운다. 예전엔 남편 자는소리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느끼곤 했는데 이제는 두 배가 됐다. 사는 게 별건가, 행복이 별건가. 이게 행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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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더니 8시가 다 됐다.
남편은 이미 출근하고 집엔 우리 둘만 남았다. 분유를 타러 갔는데 젖병들이 꺼내져있다.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텐데, 씻으러 가기 전에 물을 데워놓고 씻고 와서 열탕소독을 했다고 한다. 아유.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다. 감사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숭이. 여보야 나무야 우리 오늘도 잘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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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10시까지는 둘 다 잠에 취해있다.
10시부터 나무는 본격적인 활동 시작. 오늘따라 2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맘마달라고 칭얼거린다.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꺼이꺼이 울지 않도록 하려고 바쁘게 움직여본다. 다른 일로 새빨갛게 바뀐 얼굴은 다름아닌 똥파티였다. 카키색 찰흙을 연상케하는 찰기.. 후다닥 치워주고 외출 준비를 하려는데 나를 애타게 찾는다. 아직 엄마 껌딱지가 될 시기가 아닌데 벌써부터 나랑 있고 싶니 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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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잠든 사이에 옷을 갈아입었다.
산후검진하러 가는 날. 12시에 예약이라 점심시간에 남편이 집에 와서 아기를 봐주기로 했다. 남편 먹으라고 반찬이랑 국이랑 밥을 차려놓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바통 터치를 하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본 초음파화면. 자궁도 돌아왔고 난소도 괜찮다고 했다. 아기 낳은지 얼마 안 돼서 초음파화면을 봤을 때 자궁에 아기가 없는 게 너무 낯설었는데. 벌써 그때가 그립네. 손 하나로 얼굴을 가리고, 자주 코가 눌린 채로 만났던 그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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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간지 40분 만에 집에 돌아왔다.
급하게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나무가 찡찡거려서 허겁지겁 먹었다고 했다. 다시 돌아온 육아현장. 나무를 안아서 재우다보니 집안일이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슬쩍 눕혀놓고 밥을 차렸는데 다시 나를 부른다. 그때가 3시였는데 4시가 다 되어 점심을 먹었다. 국에 말아놓은 밥은 퍼지고 국은 다 식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입에 넣기 바쁜 이숭이. 그러고는 나무를 달래고, 빨래랑 청소를 했다. 아, 설거지랑 물걸레 청소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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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소파에 앉아서 졸고있는데 남편이 퇴근했다. 눈을 떴을 때 이미 남편은 씻고 와서 설거지와 빨래를 끝내놓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메뉴는 두부된장찌개, 쌈배추, 비빔밥. 나무가 자고 있을 때 차리고 한 숟갈 뜨려고 하면 나무가 깼다. 오늘도 안고 먹고, 교대로 먹는 식사시간. 그래도 혼자 먹는 것보다는 훨씬 맛있고 든든해서 좋았다. 남은 일정은 나무 목욕과 내 샤워가 기다린다. 우리 향긋하게 자러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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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일 된 나무.
손을 빨려고 입 주위에 손이 맴돈다. 소매에도 침이 흥건하게 묻기 시작했다. 아직은 힘조절이 어려워 삐걱삐걱거리고 있는데, 이 때 내가 옆에서 도와주면 곧잘 손을 빨았다. 손보다는 주먹을 빨았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오른손으로 연습했더니 이제는 꽤 자유롭게 입에 드나든다. 손가락도 빨고 그러다 입술이나 코를 치기도 하지만 꽤나 큰 발전이었다. 저녁에는 왼손 연습하기. 쫍쫍쫍. 낮에 자면서 입에 손을 넣으려다가 얼굴을 긁어버려서 영광의 상처를 얻은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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