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7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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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일요일,
밤9시부터 나무는 자고 있었고 우리도 이제 막 발을 쭉 뻗고 쉬었다. 꿈틀꿈틀. 더 많이 잤으면 했는데 1시에 깨자마자 배고프다고 울어댔다. 맘마를 먹이고 다시 재웠는데 시계를 맞춰놓은 듯 2시간 30분마다 일어났다. 맘마 주세요 맘마. 다 비우고 소화를 시켜도 트림이 잘 나오지 않는다. 겨우 꺼억 소리를 듣고 눕히는데 속이 불편하지 계속 끙끙끙. 잘 자고 있는 아빠까지 깨울만 한 소리를 낸다. 갑자기 왈칵하고 게워내길래 옷을 갈아입히러 거실로 나왔다. 동이 틀 무렵까지 달래주고 안아주다가 다시 누웠다. 예방접종 주사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 긴장했지만, 쿨쿨쿨 깊게 아기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자라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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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어서야 마음놓고 잠을 자러 간다.
오늘도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아주 열심히도 잤다. 눈을 뜨니 11시가 넘었고, 쑥대머리 이숭이로 변신했다. 나무 몸이 뜨끈뜨끈 열이 오르는 것 같아 체온을 자주 쟀다고 했다. 38.5도까지 올라갔다가 집과 몸을 시원하게 했더니 원래 온도로 내려온다. 혹시나해서 근처에 있는 병원과 응급실을 알아봤다고 했다. 아유. 열이 떨어져서 다행이네. 나무는 오전부터 계속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확실히 평소보다는 기운이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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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빵집 빵과 우유를 꺼내 먹는다.
올리브치아바타, 할라피뇨치즈, 카야버터브레첼 세 가지를 골고루 집어서 입에 넣었다. 냠냠냠. 그리고 우리는 연휴동안 마실 커피를 생각하면서 갈아먹을 원두를 찾아본다. 가격만큼 중요한 건 연휴 전에 도착하느냐 안 하느냐. 주문하는 걸 홀랑 까먹고 나무를 자주 쳐다봤다. 귀여워서 너도 나도 킁킁킁. 나무의 콤콤한 냄새를 찾아 코를 갖다대는우리도 웃기고, 잘 때 희번득하는 나무를 따라하면서 킥킥대는 우리가 마냥 철이 없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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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청소를 했다.
평소에 내가 하던 것들 이상으로 해줬다. 빨래하기, 빨래 널기, 청소기 돌리기, 바닥 닦기, 먼지털기, 화장실 청소 등등. 지쳐서 조금만 누워있겠다는 그에게 눈치없이 커피 주문까지 하는 나. 내 입맛에 맞춰서 두 번을 보완해서 만든 크림, 쓴 맛을 조절한 커피. 그렇게 아인슈페너가 완성됐다. 아, 드릴로 크림을 쳤으니 드릴슈페너라고 하자. 시나몬가루로하트 모양을 만들어주다니. 고백하는 거여? 서프라이즈여? 오메에. 아기를 보던 피로가 쏵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커피 너무 맛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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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스테이’ 2화를 봤다.
아기는 남편 품에서 잘 자고 있었고, 우리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구례여행을 떠났다. 그 순간을 더 즐겁게 해주는 꼬깔콘, 무알콜맥주까지 있으니 요것이 바로 여행이네. 냉장고에서 꺼낸 거라 마시지 못 했지만, 그의 목넘김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대리만족해야지. 늦은 오후부터 왜 점점 바빠지는 걸까. 남편은 황태채무침을 만드는 동안 나는 아기를 안고 앉아서 졸았다. 그 다음은 목욕시간. 또 그다음은 나무 맘마시간. 그 다음은 내가 진미채무침을 만드는 시간. 또 그다음은 우리가 저녁 먹는 시간이었다. 뭐 했다고 밤 9시가 되었나. 그때부터 어묵탕을 데우고 LA갈비를 구웠다. 우리집 밑반찬들은 또 왜이렇게 빨갛나. 진미채무침, 황태채무침, 무생채,김치, 연근조림.. 헤헤. 아무렴 어때. 맛만 있는 걸. 그러니 앞으로 잘 챙겨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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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무가 흐느낀다.
이 소리는 보통 뭔가 간절할 때 내는 소리던데.. 쪽쪽이는 싫다고 뱉아버리고, 이젠 입에 넣을 때마다 화를 낸다. 누워서 재우려하면 또 울고. 아기띠를 메고 걸어다녀도 울고. 기저귀를 갈아줘도 울고. 아, 이제 남은 건 배고픔일까. 먹은지 1시간밖에 안 됐는데.. 이럴 때 줘야할지 말아야할지 어려운 아빠 엄마는 큰맘먹고 분유를 타 왔다. 아기새처럼 입을 뻐끔뻐끔거리더니 눈을 감고 있으면서 깨끗이 다 비웠다. 그러고는 바로 잠든 나무. 배고파서 우는 거였구나 우리 아가야. 깨지 말고 잘자. 오늘도 많이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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