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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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토요일,
이제 밤수유텀이 길어지나.
아니면 피곤했던 걸까. 어제 아기체육관 장난감을 신나게 갖고 놀아서 그런지 나무는 아침까지도 잘 잤다. 어젯밤 9시 반쯤에 맘마를 먹고 난 후에 2시, 5시에 먹였다. 그리고 4시간이 지난 9시까지 쿨쿨쿨. 한 가지 이유를 더 찾아보자면, 5시에 너무 말똥말똥하더라. 보통 맘마를 먹으면 졸려서 몸이 축 처지는데 왜 점점 눈이 커지는 걸까. 나랑 놀고, 혼자서 한참을 놀다 잠들었으니 잠이 부족했을 것 같기도 하고. 일어나 나무야. 병원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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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접종가는 날.
산부인과도 그랬고, 소아과도 오라고 하는 날에 가고 있다. 매월 한 번씩은 가는 편인데 그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긴장이 늘 찾아왔다. 혹시나 아프진 않을까, 아기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등등 있지도 않은 걱정이 앞선다. 그럴 때마다 괜히 나무에게 더 크게 말을 건넨다. ‘나무야 우리 좀 이따 병원가는데 주사 콩- 맞을 거야. 잘 맞고 오자.’ 하면서 아기를 달래는 듯하지만 실은 나를 다독거렸다. 주문이라도 걸듯이. 2개월엔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DTP), 폐렴구균, 로타바이러스 이 3가지를 맞는 게 좋다고 한다. 돈까스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가는 병원 복장은 울퉁불퉁 우주복. 옷에 푹 파묻혀 있는 아기는 오늘은 잠들지 않고 깨어있다. 가자마자 몸무게를재어보는데 6.2kg란다. 그새 0.7kg이 늘었네. 아유 많이 컸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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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처음 온 곳을 두리번거린다.
새로운 환경에 호기심을 보이던 나무는 눈이 반짝반짝, 심지어 기분도 좋다. 주사 맞고 괜찮아야 할 텐데.. 심장 잡음도, 태열인지 땀띠인지 모르겠지만 피부도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쭉쭉 늘고 있는 몸무게도 다 오케이. 이제 주사만 잘 맞으면 된다. 누우면 보이는 모빌에 집중하는 사이에 허벅지에 주사가 들어간다. 주사 꽁-. 놀라고 따끔했는지 아파서 엉엉엉. 그래도 금방 그치던 대견한 아기는 시럽약까지 잘 삼켰다. 임신 때도 많이 들었던 ‘아기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을 굳게 믿으며 안정기가 오기를 기다렸었고, 불안할 때마다 자주 되뇌었다. 뱃속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준 강한 아기는, 세상 밖에 나와서도 강한 아기였다. 나만 걱정 붙들어매고 마인드 컨트롤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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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숙제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 그 전에 동네 빵집에 들러서 빵을 고르고, 맥도날드에 가서 빅맥세트를 사 왔다. 나무는 처음으로 140ml을 먹고 잠이 들었다. 오늘 맞은 주사는 열이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열 체크를 해야만 한다. 평소보다는 몸이 뜨겁지만 괜찮다. 언제 깼는지 아기가 노는 사이에, 우리는 ‘윤스테이’를 보며 구례여행을 떠난다. 남편이 내린 아메리카노랑 아인슈페너를 홀짝이며. 이 여유 어쩔 거야. 우리가 좋아하는 구례와 하동이 생각났다. 윤스테이 촬영 장소인 쌍산재의 초록초록도 그립고 정다운 티읕카페도 그립고 뽕잎백반과 재첩국수와 재첩국도 먹고싶다. 그냥 생각없이 달리던 황금빛 하동 들판도 그립고, 고양이랑 놀던 고택도 그립다. 이 꼬꼬마를 데리고 가고픈 구례를 눈으로만 보고 있다니 슬프다 슬퍼. 언제쯤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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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해진 저녁.
오늘의 쉐프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어묵탕과 현미밥. 잘 익은 김치와 반찬들을 꺼내 먹는다. 쉼없이 돌아가는 집안일의 중심엔 남편이 있었다. 나 결혼 잘했네 잘했어. 밤 중에 갑자기 만든 밑반찬은 무생채였다. 큰 네모칼을 꺼내서 차곡차곡 무를 썰더니 맛있게 무생채를 무쳤다. 내일은 황태채를 무칠 거라고 하던데, 나는 진미채를 무치겠어요. 요리조리 팍팍 무치자. 아기체육관에 몸을 싣고 화려한 스텝을 밟던 나무는 다시 꿈나라로 향했다. 고단했을 하루를 잘 보내준 우리 아기. 고마워. 예쁜 꿈꾸고 신나게 웃자. 킥킥 큭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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