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6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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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화요일, 새벽 2시, 나무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4시간 수유텀에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빨아들이는 속도가 엄청나다. 140ml 맘마를 쭉쭉쭉 단숨에 들이켜고 트림까지 꺼억. 요즘은 계속 다 먹어갈 때쯤에 너무 용을 쓴달까. 먹기 싫은건 아닌 거 같고 아직 이유를 모르겠지만, ‘속이 꽉차서 불편한가보다’하고 생각했다. 낮에도 밤에도 귀여움들이 한가득이다. 매력적인 동그란 뒤통수, 포동포동 살이 올라 소세지같은 다리, 하품할 때 맺히는 하찮은 눈물을 보며 새벽에도 함박웃음 짓고 다짐을 한다. 오늘 하루도 아기의 작은 것 하나에도 꽉찬 기쁨을 느끼겠노라고. . 남편은 출근준비를 했다. 그 시각 나는 나무 맘마를 먹인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남편은 출산휴가를 썼는데, 할 일이 있어서 오전에 잠깐 나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하는 혼자 육아. 접종때문인지 평소만큼 활발하지는 않다. 잔잔하게 먹고, 잔잔하게 놀고, 잔잔하게 자는 우리 나무. 아기가 누워있는 틈을 타 청소를 하기로 했다. 아기 빨래, 우리 빨래, 먼지털기, 쓸고 바닥두번 닦기, 창틀 청소를 한 번에 다 끝내지는 못 했다. 눈치게임을 하듯 틈틈이 집안일을 하다가, 아기가 부르면 냉큼 달려갔다. 자고 싶을 때는 꼭 안겨서 자려고 하는 나무여서 고목나무 매미가 된 것 같았다. 내가 나무인가 나무가 나인가. . 인간은 같은 실수를 하지. 청소하지 말고 밥부터 먹었어야 했는데.. 국도 있고 반찬도 있는데 해놓은 밥이 없다. 청소 대신에 밥을 안쳤어야 했는데.. 쾌속으로 돌리면 15분 밖에 안걸리는데 그 시간조차 내기가 힘들다. 밥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타겟을 바꿨다. 냉장고에 있는 토스트로 변경. 하지만 나는 왜 먹을 시간이 없는 걸까. 물 마실 시간도 없네. 나에게 안겨있다가 내려놓으면 금방 깨어버려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라, 눕혀서 토닥토닥 재우기로 했다. 그러다 나도 쿨쿨쿨. 그때가 2시였나. 이미 점심은 물 건너갔고 잠이나 자야지.. 저녁이나 잘 챙겨 먹어야겠다. . 남편은 3시 넘어서 집에 왔다. 나랑 나무는 안방에서 열심히 자고 있어서, 그는 거실에서 나 대신에 남은 집안일을 끝냈다. 젖병씻고 열탕소독, 빨래개기, 빨래 널기 등등. 저녁에는 약속때문에 혼자 밥을 먹어야 해서 남편이 밥도 해주고 반찬도 차려주고 남은 통닭도 데워줬다. 나무를 아기체육관에 데려다 놓고 열정적으로 먹는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구나. 나무는 내가 밥 다 먹을 때까지 혼자 잘 놀아줬다. 고마워. 밤까지 계속되는 우리만의 시간. 맘마 먹이고, 기저귀 갈고, 트림시키고, 놀아주고, 재워주고. 방에서 나무를 재우고 있는데 남편이 돌아왔다. 햄버거를 들고. . 노란빛 조명을 켠 우리집을 좋아한다. 특히 테이블 쪽에 간접적으로 내려오는 빛과 그 자리를. 최근에 벽쪽에 앉았는데 남편과 마주볼 수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뭔가 작업실 책상같은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 나무가 좀 더 자라서 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림도 그리면서 놀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해도 따뜻한 우리의 미래가 기대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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