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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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화요일,
어젯밤 나무 엉덩이에서 나던 냄새에 ‘올 것이 왔다’며 둘 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 으쌰으쌰 처리를 하려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기저귀랑 비닐, 물티슈, 손수건 등 다 챙겨서 기저귀를 열었는데 똥이 없다? 우리 둘 다 2초간 일시정지. 왜 똥이 없지? 있어야 할 게 없어도 꽤 당황스럽네. 그게 방귀냄새였다는 사실에 또 당황스러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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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반 만에 맘마를 먹였다.
그러고 다시 4시간 반을 자고 일어났다. 아기와 내가 깨어있는 아침에 남편 출근준비를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딱히 챙겨주는 건 없지만 인사라도 건넬 수 있으니까. 어제는 덥더니 오늘은 기온이 8도 가량 내려갔다. 오락가락한 날씨에 옷도 벗었다가 껴입었다가 나도 오락가락해진다. 겨울이불을 장롱으로 보내야겠다고 했는데 아직 미련이 남는다. 좀 더 내 곁에 있어주라 이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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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반에 점심을 챙겨 먹었다.
밥을 먹는 동안 잘 놀아준 나무에게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바로 설거지를 끝내고 우리 빨래, 나무 빨래 세탁기를 두 번 돌린다. 따땃한 햇볕에 말리려면 낮에 빨래를 끝내야지. 청소기도 돌아가고 건조기도 돌아가고 공기청정기도 돌아가고 바쁘네 바빠. 바닥만 닦으면 되는데 왜 이리 귀찮은지.. 내일 닦아야겠다. 그 사이 나무는 배고프다고 숨 넘어갈 듯 울었고, 또 한 번은 누워있기 싫은데 계속 누워있게했다고 꺼이꺼이 울었다. ‘고마워’로 시작해서 ‘미안해’로 끝나는 육아. 아이가 태어난 지 80일이 되어도 미안하다는 말은 매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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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벨이 울렸다.
택배라고 생각했는데 뜻 밖의 손님이었다. 아빠였다. 오늘 일 때문에 지인분이랑 대구에 오신다고 했지만, 못 보고 간다는 말씀에 아쉬웠는데 깜짝방문을 하셨다. 오늘도 그냥 오시지 않네. 근처 빵집을 찾아봐도 없어서 마트에서 그냥 이것저것 담으셨다고 했다. 내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뻥튀기, 고구마과자, 오징어땅콩, 오예스, 사브레, 맛동산, 딸기랑 방울토마토 등등. 아빠가 사 오신 딸기를 나눠 먹으면서 아빠의 시선은 나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몇 번 안아보시더니 이제는 아기를 향해 손을 잘 뻗으신다. 그새 더 많이 자랐다며, 오래 안고 있으면 무겁겠다며 내 걱정을 하시네. 영상통화 너머로 엄마는 부러움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좀 더 오래 있다가 가시면 했는데 한 시간만에 가셨다. 아이참. 늘 아쉬워서 눈물이 났는데 오늘은 웃으면서 빠빠이 인사를 나누는 우리. 조만간 통영 갈게요 아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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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부터 나무랑 곯아떨어졌다.
남편이 와도 우리는 쿨쿨쿨. 나무도 피곤했는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잔다. 반쯤 감긴 눈으로 거실에 나왔더니 남편은 내가 미처 못한 집안일(열탕소독, 빨래개기)을 해놓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메뉴는 연근부침, 두부된장찌개. 쌈배추로 배추전까지 할랬는데 반죽이 모자라서 한 장만 부쳤다고 했다. 연근을 부치기 전에 뜨거운 물에 데치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삭아삭하고 바삭바삭한 연근부침도 재료가 듬뿍 들어간 찌개도, 먹기 아까운 1/2짜리 배추전도 너무 맛있다. 내일 먹으라고 따로 챙겨놓은 연근부침에 감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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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된 나무,
자는 시간이 길어졌다. 분유량을 140ml으로 늘림과 동시에 아기체육관으로 운동을 하고, 깨어있을 때 놀아서 그런지 밤에 더 잘자는 듯했다. 그리고 팔과 다리에 힘이 많이 생겼다. 처음부터 아기체육관 피아노 건반을 발로 팡팡팡 잘 누르곤 했는데, 이제는 속도까지 빨라졌다. 마치 달리기 선수처럼 뛰는 것 같다. 가까이 있는 사물도 꽤 잘 쳐다본다. 예를 들면 자기가 들어올린 팔을 보거나, 아기체육관에 달린 장난감을 보고 있다. 가끔씩 소리를 내서 웃는다. 얼굴 가까이서 활짝 웃으면 따라 웃고, 옹알이도 더 많아졌다. 싫을 땐 크게 버럭하기도. 종종 우리만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수다쟁이 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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