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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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수요일,
여느때와 다름없는 보통날이었다.
아기는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나를 찾았다. 배가 고프면 울었고 졸리거나 불편한 게 있어도 울었다. 그러다가도 금세 웃었다. 배가 부르거나 푹 자고 일어났을 때 기분이 몹시 좋아보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쉴 새없이 떠들정도로 옹알이를 쏟아냈다. 그러다 나와 눈을 마주칠 때면 방글방글 웃음으로 답을 했다. 맘마 달라고 놀아달라고 안아달라고 기저귀 갈아달라고 나름대로 자기만의 표현을 하는 기특한 아기. 그런 아기의 반응에 반박자 느린 엄마 이숭이였지만, 최대한 빨리 응답을 해주고픈 엄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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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올게’ 인사를 하고 남편은 안방문을 닫고 나갔다. 혼자 조용히 열탕소독을 끝내놓고 회사로 향했다. 그 때 나는 맘마를 먹이고 트림시키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쩜 그리 잠이 오는지 춤을 추듯이 고개는 뒤로 넘어가고, 앞으로 떨어지고 난리였다. 그 적막을 깬건 거어억 대왕 트림소리였다. 그래, 이제 자러가자. 나무 옆에 따악 붙어서 포근한 품을 만들어준다. 너도 자고 나도 자고 푹자고 좀 이따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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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랑 연근부침과 반찬을 꺼냈다.
따끈따끈한 밥이랑 같이 먹으면서 한 번씩 슬금슬금 안방에 들어가 나무를 관찰했다. 맘마를 먹이고 쿠션 위에 올려놨는데 그대로 잠이 들었네. 보통 혼자서 잘 안자는데 자고있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럴 때 얼른 밥을 먹어야지! 다 먹을 때까지 깨지 않은 덕분에 점심밥을 평소보다 일찍 챙겨먹을 수 있었다. 종종 심심해하는 것 같으면 아기체육관으로 데려다 주었다. 눈길을 끄는 자극들이 있으면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한 나무. 눈빛과 표정부터 달라지는데 신나보인다. 오늘은 눈 앞에 있는 장난감을 쳐다보고는 손을 뻗어서 잡으려는 모습을 발견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가 대단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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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팡팡 뛰어놀고 있는 사이에 집안일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만 놀고싶다며 안아달라고 신호를 보낸다. 묵직한 나무를 안고 한참동안 돌아다니다가 소파에 앉아서 쪽쪽이를 물리고 재웠다. 신나게 놀고 응가도 하고 졸린 모양이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천천히 한 모금씩 마셨다. 육아 중에 마시는 커피는 세상 달콤하고 맛있다. 책을 읽고 폰을 가지고 놀고 일기를 쓰는 것 외에 커피를 마시는 것도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맥심 너무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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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탕소독까지 해놓고 남편을 기다릴랬는데 나무가 나를 부른다. 남편은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간짜장 곱빼기랑 탕수육 하나를 시켰고, 퇴근 시간에 맞춰서 음식이 배달됐다. 나무를 안고 먹긴 했지만 맛만 좋더라. 흐흐. 내가 씻고 나온 뒤에 바로 나무를 씻기러 들어간다. 목욕할 때는 괜찮다가도 로션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힐 때 나무는 서서히 꿈틀거렸다. 배고프다고 맘마 달라고 엉엉엉. 냉큼 먹이고 잠깐 잠든 사이에 빨래를 널고 열탕소독을 하려고 물을 끓이는데 또 나무가 나를 부른다. 열탕소독.. 도대체 언제 하지. 물만 몇 번 끓이는건지. 아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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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편의 배려로 거실에서 혼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일기를 쓰고 있다. 한글자 한글자를 남기는데 그림까지 그리고 적는 거라 은근히 시간이 걸린다. 뭘 그릴지 도통 떠오르지 않거나 그림이 마음에 안 들면 시간은 배로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시간이 좋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남기기 시작했던 하루의 기록들이 벌써 4년이 다돼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를 위한 시간을 꾸준히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도 나는 아기와 남편과 무탈하게 보낸 하루가 감사하다고, 잘 보냈다고 마침표를 찍는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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