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30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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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일요일,
눈이 저절로 떠지는 아침.
그렇다. 오늘은 시부모님을 만나는 날이다. 이번 봄에는 철쭉이 덜 피는 바람에 황매산에 못 가고, 바쁘고 바빠서 산을 타야만 하는 체력단련도 못했다. 겨우 맞춘 일정이었는데 비 소식에 산행은 굿바이. 타협의 결과는 우리집과 수목원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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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음식을 준비하려니 신경이 쓰였나 보다.
어젯밤 꿈에서 잡채를 만드는데, 당면도 부족하고, 시금치도 없고 재료도 열악해서 낑낑거리는 이숭이를 만났다.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부엌대장, 남편은 내 옆에서 보조 주방장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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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되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수육 삶는 것, 두 번째는 4인분 밥 안치기. 몇 차례나 수육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자신감이 없는 쭈구리 이숭이인데다 4명이서 먹을 양이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호기롭게 삼겹살 4근을 샀지만, 남편이 칼집을 내준 고기 3근을 삶는다. 불린 잡곡밥을 안쳤는데 다행히 둘 다 잘 된 것 같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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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든 감사히, 맛있게 잘 드셔 주시는 시부모님이다. 며느리표 밥도, 청국장도, 수육도 깨끗하게 비우셨다. 어머님의 레시피대로 쌈장까지 꽁냥꽁냥 만들어냈더니 칭찬도 두둑이 받았다. 그다음 코스는 남편표 커피. 아버님은 믹스 커피를, 우리는 원두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과일까지 또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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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으로 레츠고.
집이랑 가까워도 계절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곳. 평소에 가보지 않은 길로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6월의 수목원은 초록초록잎들이 무성하고 알록달록 꽃들이 반짝이고, 열매도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막상 밖에 나오면 흥이 차오르는 이숭이는 카메라를 열심히 들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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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도 좋고 나무 그늘이 좋아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날씨는 더웠지만 벤치랑 평상, 데크 위에도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쉬던 모습들이 평화로웠다. 아버님만 빼고. 항상 우리보다 10보정도는 앞에서 걸어가시는 아버님을, 어머님이 지어주신 별명 ‘후다닥 아저씨’. 흐흐흐. 후다닥 아버님이 시원하게 쏘아 올린 아이스크림. 나는 와일드바디랑 보석바 두 개 집은 건 비밀!!!! 시원하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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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물교환처럼 주거니 받거니 했던 교류의 장.
달걀 한 판과 수박 한 통. 부피가 커서 잘 안 사 먹게 되는데 수박이 생겨서 그 자리에서 콩콩 썰어 통에 담아뒀다. 내가 수박이랑 전쟁을 하는 동안 남편은 설거지 전쟁을 했다. 어마어마했던 양을 다 씻겨내고 그릇과 주방도구들은 쓰러져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세탁기랑 청소기까지 돌리는 열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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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하고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세상이 여유로워졌다.
남편은 누워서 폰을 가지고 놀더니 오늘도 ‘공구’의 세계에 빠져 있다. 피곤했는지 앉아서 꾸벅꾸벅. 나도 꾸벅꾸벅. 알람시계 30분을 맞춰놓고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배터리 충전한 것처럼 쌩쌩해진 우리는 다시 거실을 점령했다. 이대로 잠들긴 아쉬운 6월의 마지막 날, 6월의 낭만의 밤, 6월의 황금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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