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6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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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금요일,
우리의 하루는 3시에 시작됐다.
10시에 잠들어 5시간을 자고 일어난 나무. 맘마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면서 뒤통수를 구경한다. 뾰쪽 자란 머리카락이 새삼 귀여워서 사진을 남겼다. 나중에 보면 추억이 될 앙증맞은 나무 모습. 오늘도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살짝 눕히고 젖병을 씻고 남겨둔 아기 빨래를 갠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젖병에 분유를 채워둔다. 다시 자야하는데 왜 잠이 오지 않을까.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서 폰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 낑낑낑 속이 불편한 소리를 듣고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대왕 트림을 하고, 좋아하는 자리를 보며 까르륵 웃는다. 무엇이 나무를 기쁘게 했을까. 그 시각 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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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자마자 기절했다.
나무도 나도. 남편이 언제 깼는지도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를 만큼 깊이 잠들었다. 정월대보름이라서 아침에 더위 팔랬는데 자버리다니.. 늦게라도 꼭 팔아야지. 8시 쯤에 일어나 맘마를 먹인다. 흐린 날이라 밖이 어둡다. 잠자기 좋은 날씨라 둘은 또 다시 꿈나라로 떠났다. 3시간이 지나고 다시 또 맘마시간. 배가 부른지 신난 아기는 폭풍 옹알이를 쏟아낸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른손을 번쩍 들었는데, 오늘은 왼손을 조금씩 든다. 두 손을 맞잡으려고도 하고, 두 손을 입에 넣으려고도 했다. 색깔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는지 사물을 잘 쳐다본다. 매일 부지런히 자라는 우리 아기는 태명인 ‘나무’처럼 뿌리를 잘 내리고 쑥쑥 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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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먹고 또 눈을 붙인다.
역시 사람은 밤에 잠을 자야 해. 신생아시절엔 더 많이 깨고 적게 잤는데 왠지 지금이 더 피곤한 것 같다. 아마 그땐 긴장이 가득했을 때라 몸이 억지로 버텼나 보다. 이제는 나름 요령이 생겼는지 나무를 떼어놓고 할 일을 하거나 같이 자는 여유가 생겼다. 오늘도 열심히 제 역할을 하는 아기채육관은 나무의 발재간 능력을 향상시켰다. (타이니러브모빌, 아기체육관 만드신 분 복 받으십쇼. 아 쪽쪽이 만드신 분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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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게 도착했다.
전에 삶아 놓은 팥을 해동시켜서 오곡밥을 만들기로했다. 수수, 팥, 검은콩, 기장, 흑미와 찹쌀에 소금을 약간 넣고 밥을 안친다. 밤은 포인트. 밥솥이 돌아가고 있을 때 남편이 왔다. 더위 팔기 성공! 얼떨결에 더위를 얻고 바로 주방에 투입되는 우리집 요리사. LA갈비찜을 만들고 달걀국을 데웠다. 인터넷으로 사 먹는 나물은 처음이었는데 둘이서 먹을 만큼 양도 적당하고 맛도 괜찮다. 이렇게라도 8가지 나물로 비빔밥을 해먹는 것도 시간과 비용면에서 꽤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무가 혼자서 잘 놀아준 덕분에 정월대보름 음식도 감사하게 잘 먹었다. 올 한해도 잔잔하고 행복하게 잘 채워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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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외롭게 뒷정리를 하는 사이에 나무랑 나는 또 잤다. 나무를 안은 채로 나는 앉아서 쿨쿨쿨. 남편이 씻고 와서 내 팔을 주물러주는데도 몰랐네. 피곤했나. 아이참. 우리가 좋아하는 금요일, 잠들기 싫은 금요일. 밤 늦게까지 놀고 싶은데 우리 나무도 놀고 싶니. 눈이 말똥말똥한 거 보니 잘 생각이 없어 보이네. 말똥구리야 자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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