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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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토요일,
나무가 분유를 남겼다.
아니, 요즘 분유를 조금씩 남기곤 한다. 비록 20ml정도로 많지 않은 양. 걱정보다는 좀처럼 남기지 않던 아기가 덜 먹는 게 신기한 우리였다. 1000ml을 넘을까 봐 조마조마했던 때는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850ml에서 웃돌고 있다. 아기가 스스로 양을 조절을 하는 것 같아서 그냥 아기가 하고싶은 대로 하게 해줬다. ‘배고프면 더 먹겠지’라는 생각으로. 대신 140ml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줘야겠다. 나무는 6시간을 자고 일어나 맘마를 찾는다. 맛있게 비우고는 다시 꿈나라로 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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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아기를 맡기고 잠을 푹 잤다.
주말이라서 가능한 마음편한 늦잠, 낮잠, 잠잠잠. 남편은 시리얼을 먹고 모닝커피를 내렸다. 새로 온 커피는 구수하면서 카라멜 맛이 나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나무의 똥파티도 같이 즐기고 컴퓨터 파일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잠깐이지만 요상한 자세로 자고 일어났더니 온 몸이 맞은 것처럼 아팠다. 찌뿌둥한 내 몸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오니까 극복! 갑자기 시작된 대청소로 쓸고 닦고 바쁘게 움직인다. 창틀과 거울도 닦고 닦고 또 닦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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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늦어진 점심밥.
우리집 요리사는 한꺼번에 세 가지를 하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3개를 동시에 사용하다니. 홍합으로 육수를 내서 미역국 한 솥을 끓이더니, 갑자기 부침개까지 만들었다. 연근만 부칠 줄 알았는데 쌈배추도 부치고, 냄새로 알아차린 깻잎전까지 완성. 우리집은 명절이 온 듯 기름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양념장 콕콕 찍어서 먹는데 왜 이리 맛있냐. 같이 마시는 무알콜맥주는 또 왜 이리 시원하냐. 오랜만에 보는 윤스테이는 왜 이리 재미있냐. 그저 마음에 드는 토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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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나무 엉덩이만 씻기고 오늘은 목욕을 하기로 했다. 로션만 바를 차례가 되니까 찡찡 우는 나무는 배가 고팠나 보다. 허겁지겁 단숨에 140ml을 비우고 이번엔 졸리다고 찡찡. 씻기 전에도 졸려했으니 노곤노곤할 수밖에 없겠지. 아기를 안고 있다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팔베개를 해주고는 토닥거리는데 나무도 자고 나도 깜빡 잠이 들었다. 잠깐 잔 줄 알았던 낮잠은 1시간이 후딱 지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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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언니부부가 놀러왔다.
햄버거를 사 들고 우리집으로 출동.
우리들은 대구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민낯으로 사람을 만나다니 놀랍네. 나무는 꽤 자고 일어나 아빠 품에서 조용하고 차분히 있어주었다. 울지도 않고 최고 순둥이 모습으로 귀엽게. 커피, 아기, 세차, 자동차, 부부와 육아 등 다양한 주제로 수다들 떨었다. 후식은 커피. 그들에겐 새로 들인 원두로 드릴슈페너를 만들어 주고 나랑 남편은 그냥 커피를 마신다.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니까 카페인으로 채워야지. 낮에 맥심과 밤커피가 과연 잠을 선물해줄지는 의문이지만 잠이 안 오면 안 잘 생각으로 놀아야지. 나 안 잘래.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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