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8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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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일요일, 늦게 마신 커피보다 피곤함이 이겼다. 카페인 영향으로 못 잘 줄 알았는데 2시 지나서 자러갔는데도 꽤 잘 잤다. 대신 자주 깨긴했지만 피폐한 상태가 아니었다. 4시 반, 8시 반에 맘마를 먹인다. 새벽에 자동으로 돌아간 보일러로 방 안 공기가 따뜻해서 좋았는데 나무는 더웠나 보다. 등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거실로 데려나와서 땀을 식혀주고는 같이 시간을 보냈다. 간밤에 신나는 꿈을 꿨는지 쫑알쫑알 수다를 떠는 귀여운 나무. 이 세상 귀여운 소리는 다 낼 줄 아는우리 아기는 오늘도 너무 사랑스럽다. 우와, 밤새 모은 먼지가 이렇게 많네? 오구오구. . 남편은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 사이 아기랑 나는 둘이서 잠깐 눈을 붙였고, 밖엔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비가 와도 열심히 일하는 우리집 세탁기. 그저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이었다. 하지만 나무는 갑자기 울보가 됐다. 평소보다 보채는 게 심해졌달까. 안아줘도 마음에 안 드는지 울고 불고 엉엉엉. 노는 것도 싫대. 쪽쪽이도 싫대. 단순한 배고픔과 졸림도 아닌 듯하다. 날씨 때문일까. 몸이 안 좋은 걸까. 원더윅스일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안아주고 달래주는 것 밖에 없었다. . 모닝커피와 함께 먹는 초코케이크. 그 옆엔 꼬깔콘 한 봉지도 있다.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면서 윤스테이 4화를 틀었다. 주말마다 간식을 즐겨 먹으면서 놀던 우리였는데, 달라진 게 있다면 아기가 품에 안겨 있다는 것.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너무 큰 변화였다. 둘에게 집중하던 그때도 좋았지만 셋이 된 지금도 꽉 찬 행복이었다. 과자를 먹다가도 아기를 보고 예능을 보다가도 아기를 바라본다. 한때 유행하던 나의 뇌구조 테스트를 지금 해본다면, 아기가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 남편은 아기를 내게 맡기고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시장과 빵집, 마트에 다녀오겠단다. 인사를 하고 나가기 전에 눈이 마주쳤는데 남편 눈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기를 낳으러 가던 그날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눈물바다가 됐다. 덩달아 나도 같이눈물찡 콧물찡 얼싸안고 울어버렸다. 병원에서 진통으로 고통스럽던 순간이 생각나면서,아프면 얘기하라던 간호사분한테 배에 힘주는 게 힘들어서 거짓말을 했던 웃긴 상황에 울다 웃는 우리였다. 열달동안 품었던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고 지금 우리 앞에 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 비를 맞고 돌아온 그의 가방에 파 한 단이 당당하게 꽂혀있다. 그리고 빵, 무, 양배추, 연근, 돼지고기, 도라지 등등 많이 들어 있었다. 주말동안 밑반찬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양배추, 비트를 손질해서 만든 양배추절임. 냉동실에 보관해놓으려고 마늘도 한가득 다졌다. 그 외에 할 것은 파 손질해서 냉동보관하기, 무생채만들기 등등 할 게 쌓여있었다. 나는 아기만 전담해서 돌보고 있는데 오늘따라 너무 울고 보채고 힘들어하는 우리 나무. 아이고 짠하다 짠해. 엄마가 어떻게 해줄까. . 장을 본 날에는 바깥음식을 먹는다지. 처갓집 양념통닭을 시켰다. 아기가 있는 이후로 순살을 고집했다. 여유롭게 뜯고 맛볼 시간이 없으니까 말이다. 낑낑 우는 나무를 달래가며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보는데 ‘그린북’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아기가 잠들면 안아서 재웠다가, 울면 서서 달래고 똥파티를 벌이면 멈춰놓고 기저귀를 갈아줬다. 와, 진한 말차를 연상케하는 똥이 엄청나네.. 다시 통닭을 먹고 노는 우리는 이제 아가의 똥파티가 익숙해졌나보다. 다만 보채고 꺼이꺼이 우는 건 여전히 어렵고 당황스럽기만 하네.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졌는지 아기체육관에서 열심히 뛰고있는 우리 나무. 따뜻하게 안아줄 테니 예쁜 꿈 꾸고 내일 만나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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