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3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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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수요일,
나무야 뒤집기하느라 피곤했니.
9시에 잠든 나무는 우리가 막 자러 갔을 때 깰거라 생각했는데 더더더 자고 일어났다. 5시간을 잤는데도 기저귀는 뽀송뽀송하네? 여느때처럼 새벽 3시 쯤에 돌아온 자유시간.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한 시간을 즐긴다. 눈이 좀 시린 것 말고는 꽤 괜찮은 나만의 시간이었다. 오늘은 남편이 출근할 때 깨어있었다. 물 한 잔 챙겨주고 잘 잤냐고 묻는 심플함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럽럽럽. 남편은 자고 있는 나무를 들여다보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새 아기는 배가 고픈지 엉엉엉 운다. 부랴부랴 인사를 나누고 종종 걸음으로 나무에게로 갔다. 그래, 맘마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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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00일을 맞이한 친구네 아기.
친구랑 아침부터 문자를 주고 받았다. 각자의 육아 고충을 나누면서, 동질감을 느꼈다. 친구네 아기도 나무도 아침 댓바람부터 똥파티를 벌였다. 똥병상련이네.. 흐흐흐. 후다닥 닦아주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힌다. 손싸개를 하기 전에 킁킁킁. 양말 신겨주기 전에 킁킁킁. 어젯밤에도 누가 식초 한 방울을 떨어뜨렸나 보다. 나무가 싫어하지만 젖은 손수건으로 얼굴도 슥슥 닦아주었다. 촉촉하게 로션도 발라주고 궁디팡팡해주면 끝. 보통 똥을 누고 나면 졸려하는 편이라 쪽쪽이를 물려주면서 다시 내 품으로 슥 당겼다. 아기도 쿨쿨 나도 쿨쿨. 우리 좀 더 자고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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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후다닥 챙겨 먹고 다시 아기를 돌본다.
옆에는 믹스커피 한 잔이 든든하게 있다. 나무를 안고 거울 앞에 섰는데 이제 내 얼굴을 알아보는지 종종 웃곤 한다. 처음엔 되게 찡그렸는데 익숙해지는 걸까. 그리고 바닥에 눕히니까 뒤집기는 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이번엔 소파에 앉혀놓고 눈높이에서 이름을 부르고 활짝 웃었더니 나무도 따라 웃었다. 옹알이도 엄청난 우리만의 티키타카. 오늘따라 할 말이 되게 많아보인다. 아까 한번 세게 울 때는 힘들었는데, 그 순간이 금세 잊혀질 만큼 나무는 사랑스럽고 이뻤다. 아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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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을 못하고 있다가 남편이 퇴근하기 직전에 후다닥 밥 안치기, 빨래 널기, 먼지털기, 결명자랑 보리차 끓이기를 끝냈다. 그러고는 나무랑 나는 소파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오늘도 남편의 귀가를 보지못하고 뒤늦게 인사를 나눴다. 자는 나무를 깨워 목욕을 시키고, 다음은 내가 씻고 나왔다. 저녁만 챙겨 먹으면 큰 일정은 끝이리라. 남편은 사골곰탕 육수에 떡이랑 만두를 넣고 팔팔 끓여줬다. 우리가 요새 빠져있는 배추전과 연근부침도 함께 냠냠냠. 바로 먹는 뻥튀기. 아기가 꼭 잘 때에만 먹고 싶었는데 계속 타이밍을 놓치다가 드디어 먹었다. 헤헤.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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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무 피곤했니.
벌써 자러 갔네? 아빠 품에서 새근새근 잠든 나무를 보면서 평화로운 밤을 보낸다. 뒤집기 빨리 안 해도 되니까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 생글생글 많이 웃었던 오늘처럼 내일도 우리 아기는 행복하기를. 겨울이면 더 이상 싹을 틔우지 않고 견디는 고무나무가 이제 봄이 왔다고 새로운 잎을 펼치려 했다. 우리 아기도 나무처럼 잔잔히, 찬찬히 자라렴. 그 옆엔 든든한 아빠 엄마가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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