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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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일요일,

새벽 3시에 우리는 분주했다.

한 명은 기저귀를 갈고 한 명은 분유를 타고 한 명은 맘마를 애타게 갈구했다. 어찌나 열심히도 먹는지 깨끗하게 비운 젖병을 보면서 기분이 좋다. 마치 식당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둘이 자고 있을 때 나만 거실로 나왔다. 내일 아침에 새로 지을 밥이 생각나서 밥솥에 밥을 옮기고 씻어둔다. 미역은 물에 불려 놓고, 필요한 그릇과 주방도구들을 꺼냈다. 내가 느끼기엔 작은 소리였지만 조용한 집에서는 울림이 컸는지 나무가 계속 깼다고 했다. 미안해 다시 재워줄 테니 푹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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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먼저 일어나 밥을 안치고 소고기미역국을 끓였다. 나는 후다닥 씻고 나와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무의 백일상 차리기 시-작. 삼신상까지는 아니었지만 밥과 국, 물을 떠놓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100일동안 우리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앞으로도 계속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알록달록 떡이랑 과일 몇 개를 올려서 보기 좋게 배치를 했다. 나무가 저기 의자에 앉아 있을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떨려왔다. 한복입은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울까.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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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이 오셨다.

보고싶고 그리운 마음을 꾹꾹 눌러담았다가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인사를 나누고 바로 나무에게로 향하신다. 덜렁 안아보시고는 많이 컸다며 허허허 웃으시는 두 분이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만드신 음식들과 함께 넷이서 점심을 먹는다. 먹으면서도 시선은 줄곧 나무에게로 가는 우리들. 잘먹고 잘자고 잘노는 아기를 보며 참 순하다고, 이쁘다고 칭찬이 자자하셨다. 캬, 우리 나무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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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를 먹이고 기분이 좋아보여서 얼른 한복으로 갈아입혔다. 아기에게 버선을 신기고 한복과 복건까지 씌우니까 영락없는 꼬마도령이었다. 넷이서 휘파람, 박수, 모빌, 딸랑이 등 있는 재주 없는 재주를 다 부려서 나무를 웃기려고 해본다. 그러나 아기는 웃기는커녕 주먹고기에 흠뻑빠졌다. 깍지를 껴서 입으로 가져가려고 끙끙. 그래도 꽤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있고 반짝이는 눈빛도 보여주곤 했다. 가족사진을 찍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진도 남겼다. 간식으로 커피, 떡, 과일까지 먹고 저녁을 먹으니까 배가 빵 터질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마법때문에 좀처럼 텐션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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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이 가시고 나서 얼른 나무를 씻기기로 했다. 그 다음엔 내가, 마지막으로 남편이 씻었다. 나무는 내 품으로 오자마자 뭐가 그리 불편한지 이리저리 보채고 싫다고 꺼이꺼이 울어댄다. 나무도 긴장이 풀렸나. 호르몬의 노예가 된 나는 갑자기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아까 할아버지한테서도 얌전히 있고, 할머니한테서도 세상 순하게 잠들고 놀고, 좀 전에 아빠가 안아도 잘 있던 아기가 내 품에서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너도 울지만 나도 울 거야 엉엉엉. 눈물 한 바가지를 쏟고 나니까 기분이 다시 괜찮아진다. 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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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리하는 시간.

말끔하게 차린 백일상을 다시 포장을 해야한다. 다시 퀘스트를 수행하듯 각각의 봉투, 각각의 가방에 넣었다. 상자에 차곡차곡 쌓는 건 남편의 몫이리라. 그 다음엔 빨래 널기, 건조기 돌리고 빨래 개기, 부엌 정리 등 할 게 많은데 나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이 우리 나무는 참 순하다고 했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은 원더윅스인가. 100일의 기적은 그냥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것일까. 겨우 맘마를 먹이고 잠든 아가야, 너의 99일은 아주 스펙타클했지만 또 그만큼 사랑스러웠단다. 아유. 남편과 나는 먼지가 되어,, 녹초가 되어.. 진짜 100일을 맞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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