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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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일요일,
자러가기 전에 안방 문을 살짝 열어본다.
아빠도 엄마도 나무도 다들 꿈나라로 떠났다. 벽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서 깊은 잠에 빠진 나무야 잘 자고 일어나. 우리 둘도 정신없이 허겁지겁 잠을 잤다. 새벽에 잠깐 깼을 때에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다니.. 엄마가 잘 보고 계신가 보다. 아침 일찍 8시 반 쯤 일어나 거실로 갔더니 나무는 잘 놀고 있다. 새벽 4시 반, 엄마 옆에서 꼬물꼬물 끙끙 소리를 내면서 깨려고 하길래 울기도 전에 맘마를 먹였더니 눈을 감은 채 먹고 대왕트림을 하고 다시 잠들었다고 했다. 세게 잠투정을 하더니 그 뒤는 평화로웠다니 다행이었다. 강약조절을 굉장히 잘 하는구나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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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에 있는 대야 두 개랑 도구들을 빌려서 안방 화장실을 점령했다. 엄마가 배우실 겸 구경하는데 오늘따라 목욕이 싫은지 바둥바둥거리는 나무와 당황스러운 남편과 나였다. 물 속에 들어가니 회장님처럼 편안해보이던 아기는 물 밖으로 나오니 또 찡찡찡. 이번에는 옷 입기 싫다고, 로션바르기 싫다고 칭얼거렸다. 아유 드디어 목욕 끝. ‘이제 마음껏 놀아라’하면서 아기체육관에 데려다놓고 점심을 먹는다. 메뉴는 엄마표 닭백숙. 이제야 사위에게 닭 한마리를 잡아준다며 정말 거대한 장닭 한 마리를 두 시간 반동안 끓이셨다. 넷이서 먹기엔 엄청난 양이다. 녹두랑 마늘을 한 가득 넣은 죽까지 비우니까 배가 빵!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아유 배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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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남편이랑 나무랑 넷이서 잠깐 외출을 했다. 아기옷을 사 주시겠다며 몇 군데를 돌고 외출복과 실내복, 모자 한 가득을 쏘셨다. 우왕 우리 나무 좋겠네! 집에서 편하게 입고 놀자! 이동하는 동안에도 계속 잠만 자던 아기 덕분에 편하게 나갔다왔다. 모델 놀이에 집중해서 입고 벗고 갈아입히는데 왜 내가 땀이 나는지. 나혼자 여름이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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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슬슬 가방을 챙겼다.
점심 먹고 간다고 했는데 언제 6시가 되었는지. 아기는 가만히 있는데 나 혼자 아쉬워서 ‘여보 가지마아아아’하고 찡찡거린다. 아빠 엄마한테 ‘우리 큰 애기 잘 부탁합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둘이서 밈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랑 바닐라라떼 한 잔씩을 샀다. 해안도로쪽으로 아주 짧은 드라이브를 하고 다시 집 앞에 내려주는데, 연애시절이 생각나면서 보내기 싫어서 찡찡찡. 벚꽃 피는 봄이 오니까 더 그렇네. 혼자 눈물 한 방울 흘리고 빠빠이. 그러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동네카페로 향했다. 고구마라떼를 마시면서 놀고 있는데 아빠전화였다. ‘나무가 많이 운다고 들어오라고’. 종아리 알이 터지도록 뛰어왔는데 이미 잠투정을 끝내고 자고 있었다. 아이참 나무야. 왜 울었니.. 모처럼 자유시간이 생겨도 아기 일이라면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내가 되어 있었다. 나는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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