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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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수요일,

자유시간 좋아 좋아.
반대로 내가 친정에 온 뒤로 바빠진 우리 엄마. 안 그래도 시간을 알차게 쓰시는 그녀의 하루에 나무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 대신에 아기를 재우고 같이 자고 울면 달래고 안아주기 등등 참 바쁘다 바빠. 늘 그랬던 것처럼 새벽 5시에 일어나시고 꼬물거리는 나무에게 맘마를 먹인다. 트림과 기저귀 갈기도 같이요. 나는 오늘도 쿨쿨쿨 자다가 8시에 눈을 떴다. 몽롱한 눈빛으로 폰을 들여다봤더니 남편이 경기도랑 인천 출장을 가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조심히 다녀오시용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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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엄마는 약속이 취소돼 갑자기 등산을 가셨다. 오후에 들어오겠다는 말과 함께 스르륵. 후다닥 씻고 나무를 안고 있는데 스르륵 잠들어 버린다. ‘딩동’하고 찾아온 손님들은 친한 동생들. 진짜 집이 아닌 친정으로 초대는 처음이라 낯설면서도 신기했던 만남이었다. 가볍게 오랬더니 커피와 빵을 사 오고, 우리는 뜨뜻한 햄버거를 시켜 먹는다.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바닐라라떼랑 크로플을 곧바로 시켰다. 나는 어제부터 보약 먹기 시작했는데, 돼지고기 닭고기 차가운 거 먹지 말랬는데 헤헤헤. 먹지 말라는 건 다 먹고 있네 에헤헤. 오랜만에 만난 만큼 우리들의 대화 주제는 정말 다양하게 튀어나왔다. 공통의 주제는 유부월드, 그리고 직장인과 주부의 삶. 갑자기 터뜨린 눈물방울도 그냥 다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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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는 어제 미리 영화를 예매하고 미나리를 보러 가셨다. 다른 사람도 없이 단둘이 영화를 보셨다길래 내가 영화관을 통째로 빌렸다며 허풍을 떨어본다. ‘영화는 어땠냐’며, ‘재미있었냐’는 질문에 ‘잤다’는 대답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네. 왜 보러 가신 걸까.. 너무 추웠다는 대답도 의외였고.. 아무튼 쾌적한 영화생활이라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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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녁에 찾아온 손님.

언니는 나를 보러 오겠다며 퇴근 후에 피자 한 판을 들고 집에 왔다. 사이드메뉴는 치킨윙. 헤헤. 낮에 먹은 햄버거, 커피, 콜라, 감자튀김과 크로플에 피자랑 치킨과 콜라 추가요.. 오늘 내 생일인 줄 알았네! 무엇보다 나무를 정말 예뻐해주고, 나무와 나의 백일을 굉장히 축하해주고 나를 아주 헤아려주는 언니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달까. 나는 어째서 이렇게 인복이 많은 걸까. 달콤하고 행복했던 오늘 하루도 땡큐. 내 사람들도 땡큐. 그리고 알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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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후에 늘어져있던 남편은 오렌지를 까서 먹는다고 했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을 본다는 말이 왜 이리 좋은지. 자기만의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만족스럽네. 외할아버지를 쳐다만 봐도 까르르 터지는 여고생들의 웃음처럼, 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갑자기 생각나는 밤이다. 함박웃음 외할아버지랑 천진난만한 나무의 모습이 참 예뻐보였다. 오늘도 고마워 우리 아기, 우리 나무. 잘 자고 내일 만나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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