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1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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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목요일,

일기 짧게 써야지.. 아우 피곤해.

남편은 6시 반에 일어나 일찍 출장을 떠났다.

오늘도 엄마 아빠는 아침 일찍 아기를 내 품에 안겨주고 가셨다. 어제 늦게 자서 좀 더 자고 싶었는데 아기는 나를 톡톡톡 깨우고 있었다. 뒤집기가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지 바둥바둥거리질 않나, 자세가 불편한지 버럭 소리를 지르질 않나, 잔뜩 찡그리질 않나, 찡찡거리질 않나.. 그래그래 일어나자. 안아주다가 동요를 불러주면서 옷을 갈아입힌다. 잠깐 손수건에 물을 적시러 갔다 온 사이에 혼자 뒤집어서 문 쪽을 향해 보고 있었다. 쪼꼬미의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귀엽고 좋고 피곤하고..? 이제 뒤집기 선수가 된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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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픈데 뭔가 먹을 시간이 부족하다.

맘마도 줘야하고 세탁기랑 청소기도 돌리고 열탕소독도 해야하는데 아이참. 겨우 보약 하나를 입에 털어넣고 나무를 돌본다. 꼭 안겨서 자려는 우리 아기는 아주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었다.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자유를 얻었다. 외삼촌과 엄마 아빠의 등장에 나는 하다가 멈춘 집안일을 끝내고 씻으러 갈 수 있었다. 아이 개운해. 무~야호. 엄마랑 나랑 오빠랑 셋이서 마트에 다녀왔다. 보행기를 보러 갔다가 옥수수깡이랑 빵, 우유만 사 왔지만.. 어쨌든 갑자기 보행기가 생긴다. 외삼촌이 나무한테 주는 선물이자 우리가 처음 사는 새 장난감이라고 해야하나. 인터넷으로 질렀으니 다음 주에는 도착하겠지. 과연 나무는 보행기를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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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이 모인 기념으로 바깥음식을 시켰다.

아구찜 순한 맛인데 맛있게 매콤한 맛이 났다. 아삭아삭 콩나물과 아구 살을 뜯으며 냠냠냠. 아기 체육관에 있던 나무는 언제 그랬냐는듯 뒤집기를 하고 조용히 우리를 보고 있었다. 오메오메. 어쩐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더라니.. 나무는 정말 시도때도 없이 뒤집는다. 누워서 기저귀를 조용히 갈던 날이 벌써 그리워지네.. 하나 둘씩 자러가고 나무랑 나만 남았다. 또 뒤집고 또 뒤집고. 무거운 눈꺼풀이 깜빡깜빡거릴 때 살며시 엄마 옆에 눕히고 왔다. 귀염둥이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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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부터 자유로워진 나는 별 생각없이 리모콘 채널을 돌린다. 보고싶은 드라마, 프로그램, 영화도 많지만 그 중에서 고른 건 무한도전 옛날 방송들. 배우들이랑 추격전하던 거에 갑자기 빠져서 정신없이 봤더니 밤 열 두시가 되었다. 혼자서 깔깔깔. 4월에도 잔잔한 행복이 우리에게 가득하기를 빌었는데, 첫 시작부터 삐걱이는 날이었다. 당황스럽지만 잘 해결될 거라 믿어보자. 아까 낮에 나간 길에 본 라일락을 보면서, 우리집 앞에 핀 꽃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아파트 나무 전지작업으로 댕강 잘려진 라일락나무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참 사랑스러운 향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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