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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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금요일,

8시간 만에 맘마를 먹었다.

아침만 되면 내 품으로 오는 우리 아기. 꼬물꼬물 귀염둥이랑 둘이서 잘도 자네. 평소보다 늦게 하루를 시작하는 바람에 뒤늦게 할 일이 많아졌다. 바로 씻어내던 젖병은, 친정에선 모아서 한꺼번에 씻었다. 열탕소독을 끝내고 나니 이젠 맘마를 달란다. 외삼촌에게 잠깐 나무를 맡겨두고 빨래를 개고 청소를 했다. 어우, 발가락 사이사이에 숨겨놓은 엄청난 먼지들을 보고 우리는 크게 웃었다. 이쯤되면 궁금해지는 손냄새 발냄새. 엄마 아빠 표정이 심상치않다. 전에는 식초 한 방울을 넣은 냄새라고 했는데 이번엔 식초와 간장 한 방울을 섞은 것 같았다. 이게 아기 냄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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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이서 거하게 점심을 먹고 전화한통에 바로 튀어나갔다.

나 대신에 장난감 반납을 부탁했는데 집앞까지 와주는 서비스에 쌍따봉을 보냅니다. 그녀들의 소중한 점심시간에 내가 함께 하다니. 씻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은, 나를 냉큼 태우고 카페에 데려가준다. 요즘 자주먹는 카페로 슝. 내 커피뿐만 아니라 오빠 커피까지 사 주시다니요. 아유. 20분도 채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참 행복했다. 자유부인의 짧은 일탈, 그리고 달달한 커피, 봄날, 반가운 사람들. 잔잔한 행복이 여기에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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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나무 목욕을 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나의 실수때문에 분유대소동이 일어나고 말았는데.. 며칠 전에 분유가 곧 떨어질 것 같아 다음 단계로 3개를 샀다. 하지만 최근에 리뉴얼된 걸 깜빡한 나. 2단계를 살 게 아니라 1단계를 샀어야 한 거였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3개를 주문했는데 내일 도착한다고 하네? 내일까지 기다리기엔 정말 애매한 양.. 아이참. 결국은 마트에 가서 1개를 샀다고 한다. 나 뭐하냐.. 어째서 분유 7개를 산 것인가.. 어쨌든 당장 먹일 분유가 생겼으니 큰 불은 껐고, 생각지도 못한 지출에 허허허 웃었다. 어이없는 웃음이랄까. 그리고 갑자기 아기 레깅스를 한 두개 사러갔다가 가을 레깅스까지 담아왔네. 지출은 지출을 낳고. 돈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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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서 쉰내가 났다.

드디어 씻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외출 준비를 했다. 낮에 봤던 동생을 저녁에 또 만났다. 여러가지 후보를 두고 뭐 먹을지 고민하다가 겨우 정한 초밥. 임신했을 때부터 먹고 싶었는데 이제야 먹었네. 캬. 코스로 먹고 배를 둥둥 두드린다. 2차는 하얀색으로 뒤덮인 커피숍. 우리는 구석자리에 앉아서 그동안 쌓아둔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었다. 오늘밤엔 안 잘거라며 용기있게 마시는 밤커피 한 잔, 기분이라며 크로플까지. 캬. 이러니 내가 살이 안 빠지지.. 하지만 좋은 사람 앞에서는 다 허용되는 것들이 바로 이런 거지. 그저 신나게 먹고 놀자! 나의 옛시절과 트라우마가 싸이월드가 오늘의 키워드였네. 마음도 선물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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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벚꽃이 휘날리던 순간, 꽃잎을 맞으며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남편이 궁금해서, 남편이 그리워 전화 너머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모두가 잠든 우리집, 씩씩 색색 자는 소리만 들리던 조용한 순간. 잘 자고 있는 나무를 들여다보며 볼과 몸을 스윽 쓰다듬는 순간. 좋아하는 금요일밤 기분을 내고 싶어 틀어놓은 노래들이 좋아 따라부르는 순간. 아기의 지난 사진들을 꺼내어보는 순간. 반가운 사람의 연락을 주고받는 순간. 하고싶은 것들이 생겨서 메모장에 기록하는 순간. 오늘의 일기 마침표를 찍는 순간.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참 소중하고 감사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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