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3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_

_

4월 3일 토요일,

역시 커피 두 잔은 잠을 방해해.

말똥말똥한 새벽을 보내다 더 늦으면 내일이 힘들 것 같아 불을 끄고 눕는다. 몇 번을 깨긴 했지만 금방 잠들었다. 0시가 넘었으니까 오늘이네. 남편이 통영에 온다! 원래라면 대구 컴백홈하는 날이었지만, 나는 조금 더 친정라이프를 즐기기로 했으니 중간 확인 차 만나기로 했다. 2주 만에 만나는 우리, 얼른 오후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린왕자처럼 난 남편이 오기 몇 시간 전부터 들떠있고 기분이 좋아졌다. 나무야 조금만 기다리면 아빠 온대! 반갑게 맞이하자!

.

오늘도 내 방문은 자동문이었다.

아빠 엄마는 들락날락. 아침에 맘마를 먹이고 내 옆에 눕히러 오시고, 그 뒤로는 잘 자는지 그냥 보고싶어서 계속 들어오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을 깨니까 좀 피곤할 뿐이고 흐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아기를 너무 예뻐해주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이 오갔다. 매일 잘 지내고 있지만, 대구가는 날에 아쉬워 할 모습이 눈에 선해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벌써 신경이 쓰는 건 왜일까. 나랑 아기가 가고 나서 원래 분위기로 돌아갈 뿐인데, 조용해질 집이 얼마나 낯설게 느껴지실까. 우리가 할 일은 지내는 동안에 함께 잘 보내는 것.

.

옷 갈아입히고, 얼굴과 손발을 씻겨주고, 맘마를 먹이고 트림시키고 게워내고, 침 닦아주고 옷 갈아입히고, 열탕소독하고, 똥파티를 벌이고, 재우고. 동시에 일어나진 않지만 끊임없이 돌아가는 육아현장. 혼자선 먹는 것도 아기를 돌보는 것도 낑낑거리면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텐데, 아빠 엄마 덕분에 편하게 먹고 편하게 자고 편하게 아기를 돌보고 있다. 대구에 가면 그때부터 내가 힘들어 할지도 모르겠다. 아유. 남편이랑 다시 으쌰으쌰해야지.

.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와서 그런지 너도 나도 축 처져있었다. 남편은 늦잠을 자고도 못 일어나겠다며 침대와 하나가 되었다. 나무는 많이 자고도 졸린지 눈을 사정없이 비벼대며 재워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꼭 안겨서 자려고 하더라. 아주 불편한 자세로 잘만 자던 우리 아기. 얼마 후 깨서 텔레비전도 보고 조용히 잘 노는 것 같더니만 또 똥파티를 벌였다. 치우자마자 바로 시작된 목욕시간. 엄마랑 나는 ‘올로롤로로롤로로’ 소리를 내면서 나무가 울 틈을 주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물에서 첨벙첨벙 놀면서 잘 끝냈네. 아유 기특해라.

.

오후 6시, 장마같은 비를 뚫고 남편이 왔다.

혀짧은 소리로 신나게 반겼는데 그것보다는 호피무늬 복장에 적잖이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나무를 안아보더니 목도 잘 가누고 묵-직하단다. 눈 앞에서 뒤집기를 봐서 신기해하는 눈빛이었다. 방긋 웃을 줄 알았던 나무는 아직 아빠를 모르나 보다. 하긴 엄마도 모르는 것 같더라.. 선물로 받은 대왕갈치를 노릇노릇 굽고 돼지고기 두부조림, 시락국과 반찬들로 넷이서 저녁을 먹는다. 꽤 평화롭나 싶었는데 나무는 배고픔과 잠투정이 동시에 터졌다. 뿌애애애앵. 남편이 달래도 내가 달래도 계속 운다.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울고. 결국 외할머니 출동! 겨우 달래고 재웠는데 10분 쯤 뒤에 눈을 번쩍 뜬다. 그거 자려고 그렇게 울었니. 초고속으로 체력을 충전하네 우리 아기..

.

부모님은 모처럼 우리 셋이서 시간을 보내라며 일찍 방에 들어가셨다. 아빠 품에 안겨서 잘 것 같지 않은 눈으로 온 세상을 두리번거린다. 꽤 멀리 있는 나를 보며도 웃고, 누워서 올려다 본 곳에 아빠가 있으니 아주 높은 음역대로 웃고 소리를 내었다. 끼룩끼룩 갈매기 같기도, 고양이 같기도 돌고래 같기도한 동물의 세계.. 편의점에서 사 온 커피우유와 아메리카노 한 잔씩 들고 목마름을 달랜다. 우리 세 사람 너무 오랜만이야. 오랜만에 같이 자겠네. 신난다 무~야호.

_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10402 이숭이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