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_
_
4월 8일 목요일, 0시, 하루의 시작 일정은 남편이랑 통화하기.
내일을 위해 불끄고 누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끊을 것처럼 하다가 계속 이어가는 15분 가량의 시간. 그리고 나무 맘마시간. 우애앵 우는 소리에 큰방으로 갔더니 배고프다고 낑낑낑. 엄마 아빠를 다 깨우고 배고프다며 허덕이는 우리집 대왕 나무. 오늘도 깜빡이없이 들어오는 이 아가야는 맘마를 타는 시간조차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도 없는데 젖병을 우와아앙 베어 먹어버릴 듯한 사나움, 공격성. 그마저도 귀여우니 이걸 어쩐담. 그저 사랑이었다.
.
여느때처럼 아침맘마를 먹고 잠든 상태로 내 품에 쏘옥 들어오는 우리 아기. 좀 잠들만 하면 깨고 바둥바둥거리고.. 깨면 엄마가 데리고 나갔다가 잠들면 내 옆에 눕히고 또 깨면 또 데려나가고.. 뭐하냐 나무야..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깊이 잠들었다. 그 덕에 나도 쿨쿨쿨. 10시에 깨자마자 또 맘마를 먹이고 새콤한 냄새나는 손과 발을 씻어주었다. 물에 떠내려가는 먼지들과 정체불명의 실밥들을 보면서 피식피식. 아기랑 어울리지 않는 식초와 간장을 섞은 향기?와 손톱 밑에 낀 때는 또 왜이리 귀엽고 웃긴지. 상상도 예측도 할 수없는 아기의 세계. 그 의외의 순간들로 하여금 웃게하고 놀라게 한다. 대구 집에서도 자주 했던 거울 놀이. 그 영향인지 거울을 보면 씨익 웃는 귀염둥이였다. 나 녹는다 녹아.
.
토마토 파스타가 드시고 싶다던 엄마.
아빠는 아기를 맡기고 나가서 먹고 오라고 했는데, 이래저래 신경이 쓰여서 배달주문을 하기로 했다. 크림해산물 빠네랑 감베로니 파스타가 집으로 슝. 식전빵이랑 샐러드까지 곁들이니까 제대로 홈파티를 연 것 같다. 두 세번 정도만 드시는 분인데 일부러라도 더 드시는 듯했다. 둘이서 빠네 빵까지 다 먹었으면 말 다한거지 뭐. 나무는 우리가 신나게 먹는 동안 아기체육관에서 잘 놀아주었다. 아기 보느라 나가질 못 하는 우리에게 ‘배달 시스템’은 정말 한줄기 빛이었다.
.
소가 된 이숭이.
먹고 얼마 지나자마자 드러눕는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아기는 혼자 자면 곧잘 깨는 편이라 토닥이거나 옆에 딱 붙어있으면 잘 잤다. 그러다 나도 낮잠 여행을 떠났다. 예전에 아가를 품고 있을 때 엄마방에서 자던 날들이 떠올랐다. 언제 이렇게 커서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지. 모든 게 감동이네.
124일 된 나무.
보행기를 탄 지 4일 째 되는 날. 여전히 백스텝으로 보행기는 뒤로 간다. 아니면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옆으로 가는 게 스텝. 어쩌다 움직이면서 누르는 장난감에 눈이 똥그래진다. 누워서만 생활하다가 안겨서 돌아다닐 때 즐거움을 알고, 이제는 보행기를 탄 상태에서 보이는 시선을 은근히 즐긴다. 얼마나 신기할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재빠르게 돌린다. 꽉 쥐는 힘도 세졌고 옹알이도 제법 길게 소리를 냈다. 뭔가를 말하고 있는 듯한 말투라고 해야 하나. 좋으면 까르륵 웃고 싫으면 싫다고 투정도 잘 부린다. 젖병과 공갈젖꼭지를 질겅질겅 씹거나 입으로 잘 가지고 노는 요즘. 집 안 곳곳에 돌아다니는 얇디 얇은 머리카락들. 소세지 팔과 다리는 여전히 ing인 귀염둥이의 일상.
.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 이름은 피닉스. 볼링으로 시작한 모임인데, 통영에 오면 늘 반겨주는 고마운 인연들이다. 뭘 먹을지 고민고민하다 우아하게 파스타집으로 향했다. 1일 2파스타라니 오예. 파스타 2개랑 필라프, 피자가 우리 앞에 차려졌다. 한 명 빼고는 매운 걸 잘 못 먹는 세 명은 맵다고 하면서도 잘 먹는다. 화덕피자가 맛있었다. 흐흐. 거리가 먼 곳으로 드라이브를 떠나려다 그냥 편하게 근처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떤다. 내가 요즘 빠져있는 아이스 바닐라라떼랑 크로플. 밤커피를 마신다는 건 그만큼 분위기에 매료되었다는 것. ‘잠을 자지 않겠다’는 마음인 용감한 이숭이. 다들 그대로인데 나만 아줌마, 아기엄마가 되었네. 다음에는 꼭 볼링을 치자며 굳은 다짐을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잠든 밤. 나는 과연 언제 잘 것인가..
.
방구석 1열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카모메 식당’이 나온다. 둘 다 좋아하는 거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기 낳으러가기 전 날에 본 카모메 식당을 보니까 기분이 묘해진다. 나무를 언제 만날지 모르는 생각에 두근거리던 그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든든히 챙겨먹었던 그때, 운동 좀 해보려고 빌린 짐볼에 바람을 넣다가 지쳐서 잠든 그때, 그날 밤과 새벽부터 나는 뭔가 심상치않음을 느꼈었더랬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