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0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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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토요일,

남편은 아침 일찍 목공놀이를 하러 떠났다.

요즘 흠뻑 빠져있는 취미생활. 이번엔 어떤 작품이 탄생하려나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그가 바쁜 오전을 보내는 동안에 실컷 잤다. 담요와 이불을 칭칭 감고 내 옆엔 아기의 새근새근 숨소리만 들린다. 맘마를 먹고 다시 자는 우리 아기. 얼마 후 눈을 뜬 나무를 바라본다. ‘잘 잤어?’하고 물으면 싱긋 웃는 귀염둥이. 좋아하는 음악을 켜두고 말을 걸고 몸을 닦아주었다. 촉촉하게 로션도 바르고 얼굴도 닦고 발바닥 냄새도 맡아보고 킁킁킁. 예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아기’에게 맞춰진 일상이지만, 지금 이 순간들이 꽤 괜찮다. 물론 커져버린 몸과 빠지기 시작하는 머리카락, 후두둑 고장난 듯한 손목과 관절, 매일 괴롭히는 정체불명의 피부 가려움증. 그럼에도 아기가 매일 자라는 모습을 발견하는게 흥미롭다. 내가 아기엄마라니. 이제 익숙할 때도 됐는데 아직도 신기한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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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3만 원을 내게 주시고 엄마랑 맛있는 거를 시켜먹으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오늘 점심은 중국집. 탕수육과 굴짬뽕 주문 완료! 음식이 왔으니 나무만 잘 놀아주면 된다. 아기체육관에 눕히고 모빌을 켰다. 한창 시각이 발달하고 있는 시기라 뭔가를 오랫동안 잘 보고 있을 때 우리는 열심히도 먹는다. 엄마가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너 대구가고 나면 이런 거 끊고 살 빼야지’. 흐흐흐. 여자는 366일 다이어트 중이라더니. 물론 엄마는 꾸준히 운동을 하고 계시니까 관리를 잘 하실 것 같다. 나만 잘 하면 돼.. 빼야할 사람, 운동할 사람은 바로 나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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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옆에 누워있다가 같이 잠이 들었다.

오빠가 집에 왔다. 보행기를 사준 외삼촌. 의외로 아기를 좋아하는 외삼촌. 나무를 귀여워하는 외삼촌이다. 온 가족이 모였으니 우리집 대장금 엄마는 한가득 음식을 차리셨다. 낮에 중국집 먹고 저녁엔 고추장 오리불고기요. 상추와 엄나무순이 또 나왔다. 속이 쓰려서 잘 먹지 않던 생양파도 이제는 제법 잘 먹는다. 된장에 콕콕 찍어 먹으면 어른이 된 것 같달까. 어쨌든 또 열심히 먹고 와일드바디를 하나 물었다.(일기에 대부분 먹는 얘기라 머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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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자유를 위하여 나무를 재우기로 했다.

지난 번에 나무를 두 번 재워봤는데 50%만 성공해서 오늘 다시 도전장을 내민다. 외삼촌은 나무를 안고 어둠 속에서 계속 걷고 달랬지만, 말똥말똥 나무는 좀처럼 잘 생각이 없어보인다. 3~40분 쯤 지났을까. 거실 저 멀리서 나랑 눈이 마주치는 순간, 조용히 웃는 나무를 발견했다. 포기요.. 그 다음 엄마방에 가서 누워있으면서도 계속 낑낑댔다. 엄마도 포기요. 졸린데 쉽사리 잠들지 못 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내 품에 와서 잠들고 말았는데. 아유. 수고했어 나무야. 오늘의 발견, 보행기에 있는 장난감을 자주 손을 대고 입에 넣으려고 한 것, 다리에 힘이 많이 생겨서 몸을 받쳐서 세우면 두 다리로 잘 버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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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 빠졌다.

리모컨으로 채널 돌리기도 좋아하는데, 흡사 육퇴 후 멍하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보통의 엄마들 모습이랄까. 바로 잠들긴 아쉽고 뭔가라도 하고싶은데 괜히 리모컨만 만지작만지작거렸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 육아공부를 하고, 업글인간 다니엘 헤니편을 보면서 ‘번식견과 육아견’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유퀴즈 인터뷰와 퀴즈에 몰입했다. 무한도전까지.. 우리집엔 텔레비전이 없는데 하나 들여야 하나.. 아이참. 더 보고싶어도 일기 때문에 안 되겠다. 내일 또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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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관련된 그림을 그리니까 행복해진다.

먼지를 모으는 귀여운 손과 발, 오동통한 몸, 동글동글한 얼굴, 일상이 된 기저귀 갈기, 침분비가 어마어마한 요즘, 저절로 손에 입이 가는 요즘. 나름의 차선책인 쪽쪽이. 모두 다 사랑이어라. 행복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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