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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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일요일,
정체모를 벌레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나는 방에 들어와 있고, 남편은 불을 꺼놓고 새벽 두 시 넘어서까지 불침번을 서다 왔다. 도대체 벌레는 어디서 나오는 거야. 지키고 있으면 안 나오더라? 더 놀고 싶은 토요일 밤이지만 우리는 다음 날에 중대한 일이 있으니까 자러가야만 했다. 따뜻하게 데워둔 보일러로 뜨뜻하게, 정신없이 잠의 세계에 빠졌다. 새근새근 자는 소리만 들리는 이 공간, 너무 아늑하고 평화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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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없이 쿨쿨쿨.
남편이 나무 맘마를 먹인다. 6시간 만에 먹는 맘마라 사정없이 달려드는 나무. 후다닥 씻고 후다닥 챙겨서 집을 나섰다. 처음 가는 나무 할머니 할아버지댁. 당일치기에 필요한 짐을 챙겼을 뿐인데도 양이 어마어마했다. 범보의자와 보행기, 분유포트와 젖병, 기저귀, 여벌옷, 손수건 등등. 차를 타면 금세 잠드는 아기여서 꽤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할아버지 할머니가 신나게 맞아주신다. 오늘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셨던 두 분. 우리 나무 많이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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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어린이날이라 용돈을 받은 나무, 그리고 어머님과 남편과 나 모두에게 용돈을 주신 아버님. 아이고 감사합니당. 1차 점심은 간장돼지불고기와 나물무침. 갈아만든 배 사이다로 건배를 한다. 신상 쌀로 갓 지은 냄비밥이 맛있어 깊은 맛을 느껴보려 했다. 먹다가도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장, 나무. 어머님은 후다닥 식사를 하시고 얼른 나무를 안고 놀아주신다. 오후엔 남자들끼리 일을 하러 갔고, 어머님과 나는 나무랑 놀았다. 어제부터 혀를 계속 내미는 나무의 새로운 개인기. (실은 어제 내가 거울 앞에서 계속 메롱메롱을 했더랬지..) 뒤집기 삼매경, 할머니와의 티키타카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나 혼자 방에 들어가 1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시간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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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저녁은 피조개무침과 나물무침.
통영에서 보내온 피조개를 오후에 계속 손질하시고 데치시느라 바쁘신 어머님. 그 노고에 우리는 또 맛있게 잘 먹는다. 이번엔 막걸리로 건배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대왕꼬막을 데쳐먹고 무쳐먹고 입맛대로 즐긴 한끼였다. 오늘도 순둥이가 되어 잘 웃고 잘 먹고 잘 노는 우리 아가. 잠깐 잠을 자면 체력이 급속충전이 되는지 열심히도 놀았다. 계속 놀아주는 어머님과 바둥바둥거려서 감당하기 힘들다며 금방 내려놓는 아버님. 흐흐흐. 그러다 가끔씩 ‘함 보자!’하며 나무를 안아보신다. 어느새 밤이 깊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어머님표 물김치, 나물과 깻잎과 미나리, 데친 피조개 등을 챙겨주신다. 또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안녕! 피곤했는지 차에서 까무룩 잠든 나무. 많이 피곤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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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를 하자마자 나무는 눈을 떴다.
씻겨주고 안아주는데 의외로 잠들지 못 해서 한참을 토닥이다가 재웠다. 조용해진 밤, 우리의 자유시간! 하지만 왜 이리 할 게 많나요.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설거지, 열탕소독, 짐 정리, 벌레 있는지 살펴보기.. 일기를 쓰며 하루를 돌아보는데 아버님의 얘기가 생각났다. 행복의 조건에 건강과 돈이 있는데, 다른 또 하나는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고. 나는 행복이 곁에 있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기가 있고, 든든한 우리 남편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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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일주일 밀가루 안 먹기 성공했다!
너무 먹고 싶었던 얄라궂은 것들.. 드디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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