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1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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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토요일,

둘은 자러갔고 혼자 거실에 남아 일기를 적는다.

4월 마지막 날 이야기를 5월 첫 날에 마침표를 찍는 기록. 작은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중에 꺼내보면 어떤 기분일까. 흐릿해질 기억과, 몹쓸 기억력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기 위한 나의 작은 노력이었으리라. 이대로 자러가긴 아쉬워 책을 펼쳤다. 이유식 도구들도 하나 둘씩 준비해야하는데, 집 정리 방정리도 해야 하는데, 매트랑 침대도 사야하는데 아이참.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읽는 글들은 이유없이 마음에 들었다. 바쁜 육아 중에 무언가를 한 것 같아서, 아기와의 세계가 아닌 누군가의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것 같아서 한 장이라도 더 읽어보려고 했다. 어느새 새벽 두시, 이제 자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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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4시 반에 맘마 180ml을 다 먹었다.

트림까지 시키고 젖병을 갖다놓으러 부엌으로 갔다. 불을 켜자마자 보이는 벌레들. 으악, 저게 뭐야?! 까맣고 작은 벌레가 여럿 기어다니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보이던데.. 바퀴벌레 새끼인지 권연벌레인지 뭔지 모를 정체였다. 급한대로 화장지로 슥슥 잡았지만, 그때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외부에서 들어온 거면 어디에서 들어왔을까’ ‘내부에서 생긴거면 어쩌지’로 시작해 ‘바퀴벌레면 이미 알을 깠다는 건데.. ’ ‘권연벌레면 곡식이나 밀가루같은 곳들에 살 텐데 어디에 서식하고 있나’ ‘앞으로 이 벌레들이 점점 커진 상태로 마주하면 어쩌지’ ‘어떻게 잡아야 하지’ ‘남편을 깨워야 하나’ ‘깨운다고 해서 지금 해결할 수 있을까’ 등 엄청난 고민을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본 혐오 벌레들.. 새벽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고. 바퀴벌레만은 아니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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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알려줬다.

오늘 우리가 해야할 것들 중에 ‘벌레가 있을 만한 곳 찾아보기’가 추가됐다. 빨래를 개고, 빨래를 하고 이른 점심을 먹는다. 들깨죽과 양념불고기. 버섯, 청양고추, 양파가 들어가서 더 맛있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말에 아기를 데리고 외출을 하기로 한 우리. 생각없이 나왔다가 너무나도 차가운 바람에 나무 외투랑 담요를 챙겨나왔다. 육아로 남편이 사다준, 집에서만 먹던 베를린슈페너를 카페에 가서 먹다니. 오랜만에 만난 사장님한테 아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여긴 분위기도 좋고 맛도 좋고. 벌컥벌컥 마신 탓에 심장이 요동을 치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웨이투고 카페에 들러 바노피파이랑 시오빵을 담아왔다. 밀가루 안 먹기 6일 차라 먹지도 못 할거지만 끝나면 먹을 의지를 보이는 나. 하하하하. 반갑게 맞이해주신 사장님은 나무에게 하트뿅뿅 눈빛을 보내셨다. 날이 추워서 더 이상 갈 데도 없는 우리는 시장에 들러 과일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했는지 나무는 그새 잠이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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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여유로운 주말을 보낸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뱉는 순간부터 아주 바쁘고 말았는데.. 벌레가 있을 만한 곳을 찾다가 부엌과 냉장고 정리에 들어간 두 사람. 욕심부려 산 소스들과 즙, 마스크팩, 잼들아 안녕.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싶을 때 세탁기 종료음이 울린다. 이제는 밥 시간. 남편은 유부초밥, 김밥부침, 양념불고기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나무를 안고 어화둥둥. 8시가 돼서 유퀴즈를 보면서 저녁을 먹고나니까 아기 목욕이 기다리고 있다. 오메. 그리고 밤 열두 시가 넘었네.. 갑자기 벌레 출몰에 다시 긴장 상태. 5월 시작부터 아주 강렬하네.. 아찔하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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