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3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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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목요일,

요새 일어나면 남편은 사라지고 없다.

슬금슬금 살금살금 조용히 잘 빠져 나가는군. 혹시 더울 것 같아서 상의만 입히고 작은 수건으로 배만 덮어주었다. 자다가 다리랑 발을 한 번씩 만져보면서 체온을 확인하곤 했는데, 차가우면 이불을 살큼 덮어주었다. 맘마를 먹이려고 안았는데 등이 축축하다. 밤새 더웠나 보다.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줄게 아가야. 8시간 공복이라 분유 한 숟가락을 더 떠서 200ml을 먹인다. 배가 고팠는지 꿀꺽꿀꺽 다 비우고 말았네. 200ml을 먹은 건 처음이네. 우와. 그만큼 뱃구레가 커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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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다시 잠들고, 혼자 폰을 만지고 있는데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기 자고 있는지 물어보시면서, 지금은 어디가는 중이라고 10시 이후에 보자고 하신다. 그러다 갑자기 딩동! 호출벨이 울린다. 택배 올 게 있는지, 누구인지 궁금해서 봤는데 아빠랑 엄마였다. 오메. 통영에서 부모님이 오신 거였다! 그것도 서프라이즈! 깜짝 방문을! 현관문 앞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개다리춤으로 다들 웃음이 터진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며칠 전에 오늘 내일 중에 일정을 살짝 파악하신 게 이거 때문이었구나. 오늘도 양손 가득 5월의 산타가 되어서 나타나셨네. 같이 먹으려고 포장해오신 충무김밥, 우리가 좋아하는 추어탕, 떡, 감자랑 수박 1통. 급하게 와서 못 샀다고 하셨는데 이 정도였다. 아이참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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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2시간을 꼬박 달려 ‘나무보러 왔다’며 자고 있는 아기 앞에서 흐뭇하게 바라보신다. 눈을 뜬 나무는 보자마자 싱긋 웃었다. 거기에 또 홀랑 넘어가신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 안 본 사이에 많이 컸다며, 입이 귀까지 걸렸다. 아기가 이렇게 활력소였다니. 안아주고 놀아주고 맘마 먹여주는 동안 집안일을 하나씩 했다. 수건 빨래랑 건조기 돌리기, 설거지, 열탕소독, 수건 개기 등등. 셋이서 도란도란 충무김밥을 먹고 과일을 먹는다. 대충 챙겨 먹으려 했던 점심을 정말 든든하게 먹었네. 배도 든든 마음도 든든. 오후 4시가 되자 짐을 챙겨서 쿨하게 떠나신다. 더 있다가 저녁까지 드시고 가시라고 했지만 거부.. 나무를 안고 밑에서 배웅을 해드리고 차가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다. 근데 왜 후진을 하시지? 엄마가 다시 내려서 나무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쥐어주고 가셨다. 아이참,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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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했던 집에 우리 둘이 남겨졌다.

오늘따라 왜이리 더운지 혼자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할 정도로 땀이 났다. 아직 여름 옷도 안 꺼냈는데 왜 벌써 대구는 30도를 찍나요.. 그렇게 시작된 아기랑 목욕시간. 평화롭게 목욕을 끝내고 나까지 겨우 씻고 아기를 다시 안아준다. 엄청 졸렸는지 안기자마자 잠들었네. 젖은 머리로 나도 옆에서 쿨쿨쿨. 한 시간을 자고 일어나니까 남편이 장을 봐 왔다. 저녁도 충무김밥. 둘이서 충무김밥 추억을 나누며 배를 채웠다. 부지런히 아기랑 놀아주고, 아기를 안아주는 남편은 나무를 재웠다. 22시 40분. 드디어 자유시간인가요. 오늘은 조금 일찍 육아퇴근을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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