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8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_

_

5월 18일 화요일,

남편은 알람소리에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하는데 눈뜨고 혼자서 놀고 있는 나무를 발견했다. 나 혼자 자고 있었네. 아침 7시 맘마를 먹이고나서 출근 하는 남편을 배웅했다. 오늘 갔다오면 또 하루 쉬니까 즐겁게 다녀오라고 인사를 나눈다. 한 시간 정도 놀다가 눈을 세게 비비는 걸 보면 졸음요정이 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너도 쿨쿨 나도 쿨쿨. 눈을 떴을 땐 시계바늘이 11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얼마나 잔 거야.

.

통영에서 택배가 왔다.

지난 주에 주소를 잘 못 지정하는 바람에 통영집에 도착한 나의 택배. 거기에 엄마는 알록달록 여름 잠옷 두 벌과 껍질 깐 완두콩 한 봉지랑 같이 보내셨다. 안에 뭐라도 하나 더 넣으려는 아빠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택배 상자에 아빠 글씨를 보면 왠지 몽글몽글한 기분. 우리가 좋아하는 완두콩 계절. 완두콩처럼 연두색 잎들이 자라는 이 계절을 사랑한다. 완전한 초록이 되기 전의 어리고 푸릇푸릇한 그 색감도. 무럭무럭 자라는 우리집 나무들, 아기 나무와 고무나무도 애정해.

.

뭐한다고 바빴더라.

아, 거울을 닦았지. 숙제처럼 고이 모셔둔 창문도 닦았더랬지. 유리는 신문으로 닦으면 아주 반짝반짝 잘 닦인다는 걸 옛 직장에서 배웠었지. 흐흐. 얼룩들이 사라진 창문을 보며 그냥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세탁기랑 건조기는 쉬게 해야지. 틈틈이 나무랑 놀아주고 기저귀를 갈고 맘마를 먹였다. 내 체력이 가장 괜찮을 때 하게 되는 아기 목욕. 에어의자랑 샤워캡은 정말 혁명이었어. 나 혼자서 목욕을 시킬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아기가 잘 때 나도 얼른 씻고 나와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뿐. 깼지 뭐.

.

2시 반이 되어서야 떡국을 끓인다.

아까 청소할 때 떡을 불려두길 잘했지. 사골육수 덕분에 편하게 떡국을 끓인다. 작은 만두 3개를 넣고, 급하고 귀찮으니까 달걀은 그냥 휘이 젓는다. 보글보글 끓을 때 파를 넣고나서 늦은 한 숟갈을 떴다. 유모차에서 혼자 놀면서, 먹는 나를 자주 쳐다보는 나무. 보채지 않고 잘 있어줘서 마음 편하게 잘 먹었다. 너무 더운데 너무 뜨거운 떡국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맛있고 든든한 아이러니. 따뜻하고 덥고 덥고 따뜻하네.

.

어찌 이렇게 시간이 잘 가는지.

설거지, 젖병을 씻고 열탕소독, 청소기를 돌리고 오니 4시가 넘었다. 땀은 왜 이리 자꾸자꾸 나는지. 선풍기 앞을 계속 기웃기웃거리고 있다. 대구의 더위도 보통이 아니지만, 안 그래도 많은 땀이 출산 후에 더 많아 졌다. 온도변화에 민감하고 땀 구멍은 더 커졌나.. 아유. 유모차를 태우고 오늘도 스텝퍼 10분 걷기 시작. 많이 걸어도 되는데 정확하게 10분만 하고 멈추는 칼같은 이숭이였다. 이럴 때만 되게 쿨한 성격이네. 잠깐 땀 좀 식히다가 우리 둘 다 다시 낮잠을 자러 떠났다. 제일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왔다네.

.

저녁은 반반 통닭을 시켰다.

남편 친구부부가 우리집에 놀러왔다. 아기 과자 우리 과자, 맥주를 사 들고 오신 고마운 손님. 나무를 보자마자 입을 삐죽삐죽거리다 울음을 터뜨렸다. 몇 번을 지켜본 결과, 나무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낯을 가린다는 것. 시간을 두고 탐색하다가 점점 웃음이 많아졌다.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귀염둥이. 통닭을 먹다가도 맥주를 마시다가도 우리들의 시선은 아기에게 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랑 또래인 아기가 있는 아빠 엄마였으니까. 육아와 출산, 경험담을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던 신나는 화요일 밤. 그들이 가고 나서도 나무는 1시까지 똘망똘망했다고 하던데.. 안 자냐..
_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10517 이숭이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