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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숭이 Jul 21. 2021

2021071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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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수요일,

[하루 늦게 쓰는 일기]

나무는 아침에 일어나면 맘마를 먹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놀다가, 졸릴 때쯤 내가 있는 방으로 온다. 같이 쿨쿨쿨 자려고 했는데 왜 눈이 다시 말똥말똥해지는 거야? 한참을 꿈틀꿈틀대더니 한 시간 좀 넘게 자고 일어났다. 이리 앉았다가 저리 앉았다가 베개에 누웠다가 내 얼굴 위에 볼을 얹었다가 내 몸을 타고 올랐다가.. 끝이 아니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감아서 잡아 당기질 않나 엉덩이를 내 얼굴에 갖다대질 않나.. 이 작은 몸에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거니. 귀염둥이 미쉐린 오늘도 신나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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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을 데워 왔다.

불안하게 시작부터 울려고 하네.. 배고프니까 빨리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숟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잘 먹길래 안심하는 순간 그 분이 온다 온다.. 눈물요정님. 너무 서럽게도 운다. 분유를 타 와서 먹여보려 했지만 실패. 어.. 입에 있는 건 다 삼키고 울면 안 될까? 미처 삼키지 못 한 미음이 줄줄 타고 내려온다. 다시 떠먹여 보려했지만 싫단다. 이미 울음이 터지고 나면 분유를 먹이기도 힘들다. 장난감을 틀어놔도 어르고 달래도 싫대. 그럴 땐 안아서 진정될 때까지 안아주면 괜찮아져서 맘마를 다시 먹기도 했다. 폭풍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닭고기단호박미음 65ml, 분유 170ml이면 엄청 잘 먹은 거네. 아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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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가 먹고 싶다는 말에 엄마는 콩국수를 만들어 주셨다. 작년에 우리 둘이서 자주 먹었던 여름의 맛을 통영에서도 느껴보네. 진한 콩물에 얼음 동동 띄워놓고 좋아하는 고명을 올린다. 크햐아 이 맛이지. 보행기를 타고 있던 나무는 계속 우리 곁을 맴돌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을 했다. 조만간 국수로 촉감놀이를 해 봐야 겠다. 오후에 잠깐 자고 일어나서 또 열심히 움직인다. 우리 몸을 넘어가려는 건 기본이고, 앉기 지옥은 계속 하면서도 이제는 잡고 일어서려고 손을 마구마구 뻗었다. 할아버지의 ‘띵까띵까’ 놀이를 좋아하는 나무는 할아버지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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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을 켜놓고 다같이 낮잠시간을 가지려 했지만 아기만 잘 생각이 없었다. 나무의 관심은 잡고 일어서는 것. 큰 베개를 작은 탁자 앞에 세워 놨는데 몇 번을 해보다가 베개를 꼬집 듯 잡더니 한 번만에 일어났다. 머무거림 주춤도 없이 시원하게 다리를 펴는 모습에 대견하고 기특하고 놀랍다. 어느새 팔불출 도치맘은 우리 아기는 천재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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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무 주려고 사 오신 미니단호박.

두 조각을 잘라 쪄주셨다. 으깨고 식힌 단호박과 숟가락을 하나 들고 아기에게 갔다. 의자에 앉아 그릇을 뚫어져라 보고 있네. 단호박이 맛있는지 금방 꿀꺽 삼키고 또 입을 벌린다. 잘 먹어줘서 고마워! 단호박파워로 쾌변을 불러왔다네. 기저귀를 안 벗으려해서 전쟁하다가 옷이랑 이불 배리고, 씻으러가서는 이것저것 다 만지려해서 정신없게 하는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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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일된 나무.

나의 체력과 인내는 점점 바닥 바닥을 보이고.. 버팅기느라 기저귀 채우는 것도 맘마 먹이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네.. 그럼에도 하루하루 커 가는 아기를 보는 건 커다란 축복인 것 같고. 육아는 정말이지 양가감정의 극과 극,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일인 듯하다. 얼마 전에는 혼자서는 못 앉았는데 그 며칠 사이에 앉기, 잡고 일어서기, 베개를 계단 타듯 오르락을 하고 있다. 어쩜 오늘이 제일 작은 우리 아기를 내가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야지. 흐르는 건 땀인가요 눈물인가요.. 윗몸 일으키기라도 하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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