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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숭이 Aug 06. 2021

20210730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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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금요일,

[하루 늦게 쓰는 일기]

할머니가 나무를 안고 재우시다가 침대에 눕혔다.

혹시나 깰까 봐 얼른 옆에 누워서 토닥토닥거렸지만 꼬물꼬물 꿈틀꿈틀 벌떡 일어나버렸다. 오메. 내 바지에 달린 끈을 주우욱 당겨서 가지고 놀더니 또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간지럽혔더니 까르륵 웃음이 터진 나무. 밤 중에 웃음보따리를 흘렸니.. 귀여운데 말똥하니까 조금 버겁고 그래.. 그러다 둘 다 갑자기 꿈나라로 떠나버렸다. 남편에게 나무가 웃는 동영상 하나를 보내놓은 게 11시 50분, 답장이 온 건 12시 5분과 12시 20분. 확인을 못 한거 보면 우리는 굉장히 일찍 잠들었고, 굉장히 피곤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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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배꼽시계는 정확하게 또는 일찍 울리곤 했다. 4시, 8시 맘마를 먹고 다시 쿨쿨쿨. 엄마는 우리 둘에게 10시 반까지 계속 자라며 방문을 닫아주고 가셨다. 그새 장을 봐오신 엄마는 ‘일어나라 게으름뱅이들아’하고 깨우셨다. 크크크 세상모르고 잘도 잤네. 오늘은 별 어려움없이 이유식을 다 먹였다. 소고기애호박청경채죽 150ml, 분유 95ml 냠냠냠.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무는 깍두기를 만드는 할머니를 구경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 다음엔 수박을 썰어 통에 담는 할머니 구경. 나무야 주방엔 볼 게 참 많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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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위해 장난감을 빌려준 언니와 동생에게 돌려줄 겸 집 앞에서 만났다. 간단히 커피 한 잔만 들이켜고 올 계획이었던 우리. 아주 잠깐 아랫니를 드러내며 울던 나무는 금세 적응했는지 이모 품에 쏘옥 안겨있었다. 잇몸만개한 이모들과 나무엄맠 그러다 갑자기 옛 일터에 가게 됐다고 하는데.. 부디 똥파티는 밖이 아닌 집에서 해주길 바라며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향했다. 혹시나 업무에 방해될까 봐 조심조심, 조용히 들어갔지만 너무 반갑게 맞아주신다. 왕이모야 품에서 갑자기 자는 동안 이모야들은 손을 만지고 다리를 만진다. 깼을 때도 방긋방긋. 오늘도 순둥순둥이 모습으로 잘 웃고 잘 놀아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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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나눔터에 가서 새로운 장난감이랑 한참을 놀던 나무.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옆에서 나무랑 같이 놀아주신다. 어르신들도, 선생님들도 다들 너무 이뻐해주셔서 또 한껏 사랑먹고 자란 우리 아기. 이젠 아래층 사무실에 가서 또 이쁨받았네. 낯을 안가린 덕분에 이모 삼촌들한테 안기고, 나는 자유로워서 편하고 우리 모두 윈윈이었달까. 책상을 바닥삼아 기어다니고 앉았다 엎드렸다 바쁘다 바빠. 더 있다가 가고 싶어도 30분 정도 외출만 생각하고 나온 거라 맘마도 간식도 물도 아무 것도 없다. 얼른 집에 가야지. 집까지 데려다 준 언니야 고마워요. 이제는 추억이 된 일터를 갑작스럽게 찾아갔는데도 반갑게 대해줘서 고마워요. 다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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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엄마랑 같이 다시 차를 타고 할아버지 마중을 나간다. 너무 졸렸니. 차에서 고개가 뒤로 훅 젖힐 정도로 곯아 떨어졌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신나게 놀아서 피곤했을 거야. 집에 오자마자 눈을 번쩍 떠서 돌아다니는 나무를 잡고 맘마를 먹인다. 닭고기고구마청경채죽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네. 어머, 이유식 150ml이랑 분유 130ml이나 먹었다고? 그게 다 쪼꼬만 배에 들어간다고? 먹고 바로 아웃풋으로 연결되는 나무의 배변활동. 그리고 2시간 후 또 배변활동. 오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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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닭다리조림을 먹었다.

할당량이 있어서 5개나 뜯었구만. 오늘은 외삼촌이 있으니까 편하게 있어야지. 그건 그렇고 또 이유식을 만드는 날이라고라고라. 야채손질도 하는 날이라고라고라. 책을 펼쳐 놓고 하라는 대로 손질을 하고 데치고 삶고 믹서기로 갈았다. 감자랑 고구마 가는 건 외삼촌 찬스. 적채, 감자, 시금치, 고구마, 시금치, 양파를 30g씩 큐브에 넣어두니까 알록달록 예쁘다. 마음이 든든한 건 두 말 할 것도 없지. 새삼 야채 본연의 색깔이 참 아름답더라. 그 다음엔 이유식 만들기. 혼자 땀 뻘뻘 흘려가며 바삐 만든 닭고기고구마적채죽과 소고기시금치당근죽. 7시에 시작해서 정리하고 나니까 10시가 다 됐네. 다리가 너무 아프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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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에게 아기를 맡겨논 채 할 일을 했다.

이제 남은 건 운동, 씻고 일기쓰기. 운동은 그냥 패스하고 후다닥 씻으러 갔다. 아기는 잘 것처럼 눈을 비비더니 내 품에 와서도 잠들지 못 하고 있었다. 마지막 똥파티를 하고, 결국 맘마까지 야무지게 챙겨먹고 꿈나라를 떠났네. 근처에 앉혀놓고 열탕소독을 하면 오늘 진짜 끝. 일기는 내일 써야지..히익!!! 1245ml이나 먹었다? 이렇게 먹으면 안 될 거 같은데.. 그만큼 소화 잘 하고 많이 움직인 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이제 진짜 하룻밤반 자면 남편을, 나무아빠를 만난다!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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