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_
_
7월 31일 토요일,
[하루 늦게 쓰는 일기]
5시 반, 9시 40분에 맘마를 먹고 스르륵 잠드는 나무. 친정에 온 김에 백신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우리 동네에 있는 잔여백신을 처음 검색해본 날에 잔여백신이 꽤 있길래 여유로운 줄 알았지.. 그 뒤로는 잔여백신이 떠도 티켓팅 이상의 수준으로 잡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틀렸다고 포기한 순간! 근처 병원에서 화이자 1개, 모더나 7개가 있다고 알림이 뜨는 게 아닌가. 눈이 동그래지면서 부랴부랴 신청 버튼을 눌렀는데 실패한 줄 알았지 뭐. 오늘 12시까지 방문하라고 알림이 오네? 문자도 왔네? 오메. 바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주사 하나에 괜히 두근두근거리네.
.
점심을 먹고 다 같이 낮잠여행을 떠났다.
거실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신선놀음 중인 나랑 아기. 할머니 할아버지는 방에서 쿨쿨쿨. 누가 다녀가는 줄도 모르고 두 시간이나 내리 잤네. 많이 잔 만큼 기분도 좋아보이는 너. 주사맞은 부위만 묵직할 뿐 몸 상태도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부재중전화 1통. 남편이 곧 고성IC라고 알려줄려고 연락한건데 이제 통영에 들어왔겠다. 대형마트에 분유를 사러 갔다가 다 팔리고 없어서 ‘분유찾아 삼만리’ 1탄을 찍고 결국 못 사고 집으로 왔다. 한 달만에 만나는 우리, 보고싶었어 여보오오오오.
.
주차장에서 우리가 만났다.
이게 얼마 만이래. 말끔해진 모습으로, 일단은 살이 빠지지 않은 모습이어서 마음에 든다 히히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과연 나무가 아빠를 알아볼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한 나. 그래도 알아볼 거라 생각했는데 시선은 아빠를 향하면서도,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웃지도 않고,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눈만 깜빡깜빡. 마치 어디서 본 것처럼 익숙한데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이참. 나무야, 아빠야 아빠.
.
아빠생신 겸 저녁식사 겸 바깥음식을 먹었다.
오리회전구이와 오리백숙. 오빠랑 나랑 남편은 오랜만에 먹는 오리구이에 조금 어버버버했지만 금세 적응을 해서 손발이 척척 맞았다. 나는 고기를 넣고, 오빠는 고기를 굽고, 남편은 고기를 빼고. 한 마리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며 호기롭게 한 마리를 더 시켰다. 부추무침과 양파장이 잘 어울려서 맛있게 먹고는 오리탕과 된장찌개도 먹었다. 나무가 혼자서 잘 놀아준 덕분에 우리는 더 음식에 집중할 수 있었다. 고마워.
.
‘분유찾아 삼만리’ 2탄.
식당 근처에 있는 동네마트 3곳을 갔는데도 분유가 없다. 놀란 게 뭐냐면, 작은 마트에는 분유를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는 거. 허탕을 치고 다른 대형마트로 출발. 여기에선 우리아기가 먹는 걸 발견해서 다행이지. 다들 어디서 사는지.. 이 정도로 분유가 귀한 줄 몰랐네. 휴우. 커피, 애호박과 양송이버섯 그리고 케이크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랑 나무한테 고깔모자를 씌우고 생일축하노래를 부른다. 아빠 생신 노래 한 번, 오빠 생일 노래 한 번, 나무를 위한 그냥 노래 한 번. 이 쪼꼬만 아기와 함께하는 생일축하도 너무 감동이야. 다들 케이크 하나를 시원하게 다 먹고 자러 가는 쿨함이란. 우리 나무는 12시가 되어도 잘 생각이 없는데.. 아무튼 돌아보니 행복한 하루, 7월 마지막 날이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