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살면서 다양한 불운이 찾아온다.
시간이 맞지 않아 불운을 막을 수 없을경우가 있다.
아버지를 간경화로 잃었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고 사람좋아하고 착한사람이어서 돈을 벌기는 애초에 어려운 사람이었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 횡포를 부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기에 아버지에 대한 정이나 그리움이 적은 편이다.
그런 아버지가 1980년에 사업에 실패하고 간경화에 걸려 죽어갈 때다.
당시에 10대인 나는 그래도 아버지이기에 어느날 무작정 서울대병원을 찾아가 지나가는 의사를 붙잡고 병에 대해, 치료에 대해 물어보니 그 의사가 대답한다. 당시엔 불치병이었다. “ 네 아버지는 죽는다. 넌 선택해야한다. 최선을 다해 끝까지 치료해야할 지를 아니면 돈을 쓰지 말고 일찍 포기할지를 그런데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라. “ 그게 내가 기억하는 당시의 의사의 조언이다.
나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에 시골에 아버지가 할머니명의로 사둔 논이 있어 그것을 팔아 아버지치료비에 쓰고 싶었다. 할머니에게 갔다. 팔자고 했다. 할머니는 거절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논은 어려운 형편이던 작은 아버지를 위해 사용하셨다. 나는 그 때 할머니를 마음으로부터 보냈다. 집안의 장남이었지만 나는 그 집안을 마음으로부터 보냈다. 그리고 집안없이 홀로 살았다.
난 살면서 집안이니 족보니 따지는 이를 만나면 화가 먼저 난다. 어릴때의 그 불행한 경험은 나를 집안이라는 소중한 유산을 버리게 한다. 난 지금도 유교의 사상에 저항한다. 유교가 조국을 망친 주범중의 하라라고 주장하면서 … 하지만 뿌리를 파고가면 어릴때의 이 경험이 제도에 대한 / 기득권에 대한 / 한국사회를 형성한 유교에 대한 저항으로 가게 된 거라고 생각이 미칠때가 있다.
사건이나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보게 된 경험은 불행한거다. 그게 내 인생의 가장 큰 불운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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