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룩한 의심 " 에로의 초대

열린신앙에 대한 4개의 시리즈중 두번째

by 김병태

판교의 포식자들: 질문을 잃어버린 성실함이 향하는 곳

작년에 판교 테크노밸리를 걸었습니다.
지하철역을 나와 유리 건물 사이로 불빛이 반짝이는 그곳은, 말 그대로 한국 IT의 심장부처럼 보였습니다. 젊은 개발자들, 스타트업 직원들, 커피를 든 채 빠르게 걷는 사람들. “혁신”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거리였지요.

그런데 어느 지점을 지나면서부터 풍경이 조금 이상해졌습니다.
지하상가 입구와 길모퉁이마다 비슷한 전단지가 놓여 있고, 두세 명씩 짝을 이룬 사람들이 젊은이들을 붙잡고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보니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순간, 판교의 거리가 하나의 거대한 “이단 전시장”처럼 느껴졌습니다.
혁신의 심장부 한복판에서, 영혼을 노리는 또 다른 네트워크가 촘촘히 깔려 있었던 겁니다.

먹이가 되어, 또 다른 먹이를 찾는 사람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 장면 속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성실한 청년들”처럼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전단지를 건네는 이들도, 그걸 받아 들고 잠시 멈춰 서는 이들도, 표정만 보면 평범한 회사원, 취준생, 대학생 같았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우리 사회와 교회가 함께 길러낸 성실한 좀비들이 여기 있구나.”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답을 맞히는 법을 배웠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이 곧 기준이었고, 시험지는 질문이 아니라 “정답을 고르는 종이”에 불과했습니다.
이 습관은 신앙에도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늘 “정답”이어야 했고,
설교를 들으며 “정말 그런가요?”라고 묻는 일은
어딘가 믿음 없는 사람만 하는 행동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단의 교리 앞에서조차 질문의 근육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이상해도, “왜요?” 한 번만 물어봐도 걸려 넘어질 말들이
“성경이 그렇다”는 말 한마디에 그대로 삼켜집니다.

누군가의 먹이가 되어 영혼을 잠식당한 청년들은,
이제 또 다른 청년들을 찾아 나섭니다.
길거리에서, 지하철역 앞에서, 카페 사이 골목에서
“혹시 성경 공부에 관심 있으세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넵니다.

피해자였던 사람이, 어느새 또 다른 먹이를 찾아 나서는 포식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 장면을 보며, 판교의 화려한 야경이 갑자기 회색빛으로 보였습니다.

질문하지 않는 신앙이 데려가는 곳

생각해 보면, 한국 교회는 성도들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왜 그렇게 믿어야 하나요?”라는 물음은
대부분 “믿음이 없어서 그래”라는 말 한마디에 막혔습니다.
의심은 곧 불신이 되었고,
질문은 순종 부족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이단들은 “명쾌한 정답”을 준비했습니다.
비록 거짓이라도, 불안한 마음에 딱 맞게 떨어지는 설명,
모든 문제를 하나의 도식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답안.
질문이 사라진 신앙은 면역력이 없는 몸과도 같습니다.
어떤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방어할 힘이 없습니다.

강단의 언어가 오염되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잠깐만요, 이건 복음과 다른데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이만큼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는 성실함”**을 믿음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1%의 자각, 거룩한 의심을 시작하며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단의 왕국은
어쩌다 갑자기 생겨난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방치해 온 “질문 없는 신앙” 위에서 자라난 열매라는 사실을요.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요.

아마도, 아주 작은 1%의 자각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이게 정말 그런가?”라고 혼잣말이라도 해 보는 용기,
설교 한 편을 들은 뒤, 성경을 다시 펼쳐 보고
“내가 아는 예수의 모습과 맞는가?”를 묻는 습관.

지금 우리는 플랫폼과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평신도의 손에 성경을 쥐어 주었다면,
오늘의 기술은 우리 손에 “질문할 권리와 자료”를 쥐어 줍니다.

AI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다른 번역과 해석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나요?”
“이단들이 말하는 주장과,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은 어디가 다른가요?”

물론 AI가 완벽한 해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 혼자만의 좁은 방에 갇혀
‘정답’이라고 주어진 말만 반복하던 신앙에서
한 걸음은 벗어나게 해 줍니다.

스스로 묻지 않는 신앙은
언제든 누군가의 먹이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판교의 거리를 떠올리며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질문 하나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성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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