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끝이 보이는 사람과 감정 소모만 하던 내게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같던 너라서 시작을 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와의 끝도 보이기 시작했다. "너는 어딜 가도 잘할 텐데, 유학 가서 더 잘 될 수도 있는데 내가 붙잡아 놓는 거 같아서, 언젠간 내가 놓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밤마다 우울하곤 해."라는 너의 말에 처음엔 "내가 널 놓을 생각이 없는데. 옆에 껌딱지처럼 잘 붙어있어."라고 답했다. 하지만 결국엔 내가 널 놓아버림으로써 우리는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보인다. 내가 널 놓지 않으면 천천히라도 간헐적으로라도 써 내려갈 서사라지만 결국엔 내가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너무 잘 안다.
너를 만나기 전 외힙만 즐겨 듣던 내가 요즘은 이별노래를 즐겨 듣는다. 어쩌면 내가 건네는 내 연애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다. 이미 너가 사라져 버린 내 세상이 붕괴되진 않겠지만 그 속의 나는 붕괴되어 도망만 치고 있을 내가 보인다. 가끔은 상상도 해본다. 같은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잠투정 부리는 너를 깨워 아침을 먹고 같이 출근하는 길을. 이 일련의 행동들이 매일 이어지는 그 순간들에 너와 내가 함께 있음을.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르는 너라서 밥은 온전히 내가 도맡아도 식탁을 세팅하고 설거지는 자신이 하겠다며 나서는 너를 식탁에 앉아 바라보고 있을 내 표정이 보고 싶다. 장을 보러 갔다가 군것질 거리만 가득 담아 짓궂은 표정을 짓고 있을 너와 그에 핀잔을 주며 다시 꺼내어 제자리에 갖다 놓을 내가 입고 있는 옷차림이 같은 체크무늬 바지 차림일 거라고. 내가 널 놓지 않고 어쩌면 모든 현실적인 벽을 부숴버리면 우리가 이루어갈 순간들일지도 모를 것을 난 자신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너와 이별한 상황인 것처럼 속이 쓰려온다. 토해내도 토해지지 못하는 감정들이 넘실거려 오열에 가까운 소리 없는 울음이 장식한다. 어쩌면 난 이미 너와 이별 중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내가 너를 놓고 찾아올 후폭풍이 무서워 미리 정리 중일지도 모른다. 이별까지 이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