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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둘러싸기

내 조각 모음.

by 지원준

나는 종종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에 대한 메모를 남긴다. 메모는 최대한 디테일하게. 예를 들자면, [주말, 집에서 낮잠을 잘 때 조그맣게 들리는 아이들 뛰노는 소리, 적당히 들어오는 햇빛, 아무도 없는 집.] 과 같이. 이렇게 좋았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수집하는 것은 내 삶을 꽤나 만족스럽게 충족시켜 준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스위치를 켜면 되는지' 알게 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가끔 삶이 팍팍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메모를 열고 시간을 들여 찬찬히 그 때의 그 순간들을 곱씹어 본다. 신선한 원두를 갓 갈아 드리퍼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잠시 뜸 들일 때의 정적 같은 순간, 좋아하는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거리를 거닐고 있지만, 우리가 걷는 거리는 없고 당신만 보일 때의 순간. 그런 순간들을 마음 속에 선명하게 그려 보고, 앞으로의 시간에 언제 어떻게 그 순간들을 넣을 수 있을 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계획이 세워졌으면, 실행한다. 그러면 거기서 파생되는 더 많은 순간들을 수집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파생되는 순간들도 언제 어떻게든 앞으로의 내 삶에 다시 끼워넣을 수 있는 흐뭇한 조각들이 되어 준다.

하지만 메모가 '순간'들에만 얽메여있지는 않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영상, 글, 단어, 표현, 느낌들도 메모에 적혀 있다. 이런 메모들은 순간에 대한 메모보다 훨씬 구체적이어서, 내 삶에 끼워넣기에 아주 좋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라고 했던가, 언제 어디서든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스위치를 바로 켤 수 있게 마련해 두는 것이다. 유투브와 애플 뮤직의 플레이 리스트, 서랍장 안의 루이보스 티, 구글 킵(Keep) 안에 적어둔 글귀들, 좋아하는 공간에 가기 위해 비워둔 시간. 모두 훌륭한 스위치들이다.

예시에서 볼 수 있듯, 메모에 적힌 것들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그것들을 수집함으로서, 나는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것들을 내 삶에서 내가 원할 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수집하지 않으면 지나가버리는 것들이니까. 이미 다른 사람들이 내게 준 삶의 조각들은 차고 넘친다. 어차피 완전해지지 못하고 조각들의 모음으로 완성되는 것이 삶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조각들을 놓치지 않고 손 닿는 곳에 놓아두는 것 쯤은 항상 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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