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기준이라는 이름의 그늘
2. 나의 기준이라는 이름의 그늘
돌이켜보면 나는 늘 '잘 키우는 것'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이라 믿었기에 나의 기준은 단단했고 예외가 없었습니다. 카시트에서 아이가 토할 때까지 울어도, 안전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앉히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 여겼습니다. 아이가 12개월이 되자마자 나는 단호하게 분유를 끊었습니다. 내가 정한 시점이 왔으니 이제는 충분하다고, 아이의 리듬보다 나의 계획을 앞세웠습니다.
그때의 나는 몰랐습니다. 아이의 몸이, 아이의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울면 잠시 차를 멈추고 아이를 달래며 쉬어갔어도 됐을 것을. 12개월이 조금 넘어서까지 분유를 먹였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 않았을 것을. 나의 선택들이 악의적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나, 너무나도 '나의 기준' 중심이었기에 지금에 와서 그 기억들은 못내 아프게 남습니다.
아이는 그 시간을 지나며 무의식중에 학습했을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표현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참는 편이 낫고, 내 목소리는 힘이 없다는 체념을 말입니다. ‘운이 나쁘다’는 아이의 말 속에는 비난 대신,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고독한 언어가 숨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