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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달 Jan 11. 2021

혼돈의 시대 속 진실의 분투, 그 참담한 미래의 체험

원더 우먼 1984(2020), 패티 젠킨스, 151분

※영화 〈원더 우먼 1984〉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더우먼은 그렇게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이었는지도 몰랐던 작별의 순간이 아쉬웠고, 단 몇 분만이라도 그와 이야기할 수 있기 바랐을 뿐이다. 그리고 찰나의 바람은 현실이 된다. ‘스티브가 다시 돌아온다.’ 무한과도 같은 삶의 일부분에 여전히 자리한 그 간절한 명제. 그렇게 나를 위한 소망이 이뤄지고, 다이애나에게는 즉각적인 행복이 찾아왔다. 하지만 정교한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맥스웰 로드의 전능함이 만든 파멸은 1984년이라는 오래된 미래로 현재의 우리에게 경고한다. 욕망의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출처: 다음 영화

〈원더 우먼 1984(WW84)〉는 남몰래 인간 세상을 구하던 원더우먼 ‘다이애나 프린스’가 저스티스 리그를 결성하기 전, 또 한 번의 지구의 종말을 막았던 1984년의 이야기다. 영화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패티 젠킨스는 2020년의 미국 사회에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작에서 끊임없이 실수하는 인간에게 남은 실낱같은 신뢰와 희망을 이야기했던 감독은 년 후 여전히 한계를 지닌 인간의 불완전한 면모로 인한 절멸 직전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경이로운 능력의 반인반신도 피해 갈 수 없는 본능적인 감정과 욕망의 결과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욕망이 자루 하나 가득 담겨 있고, 그중에는 내보이기 좋은 것도, 남들이 모르길 바라는 추악한 성정도 있다. 그리고 맥스 로드는 사람들의 심연에 간직한 염원을 끌어올려 절대 권력을 얻는다.


맥스의 소원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소원을 이뤄주는 자의 몫이다. 그를 만난 모두는 어쩌면 사소하고도 이기적인, 그래서 불가능한 소원을 이야기한다. 당연히 이뤄지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이룬 대가는 참혹하다. 다이애나는 스티브의 부활을 말하고 자신의 힘을 잃게 된다. 바바라 미네르바는 사소한 질투의 몫으로 인간성을 잃는다. 잠깐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는 맥스 로드를 지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막강한 권력자로 만들었다. 영화는 소원이 소원으로 끝나야 하는 이유와 함께 모두의 욕망이 이뤄지는 현실을 막기 위해 진실의 중요성을 말하는 원더우먼을 주목한다.


각자의 노골적인 욕망은 곧 전 인류의 혼란과 절멸을 초래한다. 핵무기의 극단 대치, 무고한 죽음혐오가 현실이 된 사회는 원더우먼도 손댈 수 없는 크기로 커진 후다. 혼돈의 한복판에 다이애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인 스티브 트래버와 세상 중 자를 고른다. 지구의 구원을 택한 그의 이유는 가장 약한 곳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연민과 보편적인 진실, 연대와 사랑이라는, 너무도 당연해서 이제는 케케묵어 보이는 이성의 가치다. 혹자는 이 지루한 일침을 가하는 원더우먼의 교화가 마지막 결투의 긴장을 이완시킨다며 지적한다. 충분히 가능한 비판이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 강력한 시각적 자극을 기대하며 두 시간을 기다렸던 관객들이다. 그리고 스펙터클한 상상력에 자연스럽게 주제를 녹여내는 역량을 뽐내는 영화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솔직한 평가로, 〈원더 우먼 1984〉가 관객의 높아진 영화적 수준을 충족할 작품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일부 동의한다.  



출처: REUTERS

2021년의 시작을 알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원더우먼을 탄생시킨 미국의 현대사를 뒤흔드는 참담한 광경을 목도했다. 민주주의의 헌장은 개인화기와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장식한 사람들에 의해 점령당하고, 시민의 대표자 생사를 넘나드는 위협으로부터 피신하는 전대미문의 반란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군 병력이 투입된 의사당에 맹방기가 등장하고 회의장에 총성이 울리며 합의와 이성이 일군 민주주의는 추락했다. 그리고 그 광기의 선동을 이끈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 권력자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는 그의 트윗으로 추진력을 얻었고, 파충류와 평행우주가 등장하는 황당한 음모론을 맹신하며 거리로 향했다. 미국의 시민들은 사 년 전의 선택이 가져온 대가를 상상하기도 싫은 방식으로 경험하고야 말았다.


출처: HUFFPOST


〈원더 우먼 1984〉는 노골적으로 워싱턴 D.C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다이애나의 일터인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워싱턴 기념탑, 독립기념일의 불꽃놀이 행, 그리고 백악관에서의 액션까지. 영화는 워싱턴을 배경으로 관객을 미국 정치의 심장부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럴듯한 술수와 미디어의 노출로 인기를 얻은 백인 기업가 맥스웰을 악당으로 만든다. 그의 터질 듯한 욕망은 사무실을 지나 백악관으로 향한다.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낸 채 초법적 존재로 거듭나는 장면은 현대 정치의 단면을 충실히 녹여낸다. 동시에 그가 어릴 적 차별에 노출된 이민자라는 정체성은 역설적인 전복의 효과를 얻는다. 그의 거대한 계획에 쓰이는 도구인 미디어는 자신의 입자 하나하나를 전 세계인에게 주입해 그릇된 욕망을 끌어낸다. 트럼프는 당선 전부터 이어진 SNS의 남발로 복잡한 사안의 더께를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것이 곧 ‘쿨하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이분법적 사고와 혐오주의로 점철된 그의 트윗은 유명해진다면 무엇이든 상관없는 현대 극우 정치의 첨병이 되었다.




‘내 눈을 바라보면 소원이 이뤄진다’라는 그럴듯한 선동으로 탄생한 2017년의 아노미에 패티 젠킨스는 전작 '원더 우먼'으로 인간의 잘못된 선택을 바꿀 개개인의 믿음과 희망을 응원한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역차별과 우월주의를 신조로 당선된 대통령의 포퓰리즘과 반지성주의가 초래한 쿠데타를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보인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미 혐오와 차별의 싹을 심어 온 사 년의 시간은 이보다 더 큰 악몽을 꿈꾸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깊숙한 본능을 미국의 지도자가 스스럼없이 내뱉는 순간은 어떤 이들에게 기회이자 자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성과 연대, 인간의 존엄은 고루한 엘리트주의의 농간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 가운데 영화는 꿋꿋하게 본질로 돌아가려고 시도한다.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방법은 겸손과 복기, 그리고 반성이다. 21세기 현대인의 높은 지식 수준을 믿었던 사람들은 현대 정치의 붕괴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쿠데타로 상처 받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시도는 다이애나의 ‘진실의 올가미’로 손쉽게 되돌릴 수 없지만, 합의된 시스템과 시민의 이성이 살아있는 한 다이애나는 언제든 다시 돌아올 것이다. 1984년에도, 그리고 2021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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