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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달 Feb 02. 2021

고공의 시퍼런 전압에 인간성을 내맡긴 노동의 줄타기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2020), 이태겸, 111분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난히도 변덕스러웠던 겨울이 찾아왔다. 어제는 살갗을 베어내듯 아팠고, 오늘은 무수한 햇볕이 쏟아지던 시간을 견디다 보면 무언가 달라질 것 없음에도 하루하루가 낯설게 느껴진다.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른 온도의 낙차를 온몸으로 체감한 사람들은 평년을 웃도는 날씨에도 옷깃을 더욱 여민다. 그리고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서늘한 이 겨울에 애써 온기 같은 것을 찾으려 들지 않는다. 관객은 시퍼런 하늘과 비릿한 철 맛으로 두 시간을 지킬 것이고, 영화는 그 기억을 잊지 말라고 호소한다.



‘정은’은 칠 년간 일해 왔던 전력회사에서 지방의 한 하청 업체 파견직으로 발령받았다. 본사 정규직에파견 명령은 해고의 전초전이다. 영화에서는 명확히 알려주지 않지만, 전문직 여성의 괴로운 노동 현실을 겨우 짐작할 만한 이유로 회사로부터 사직의 압박을 받는다. 정은은 지루하도록 꿋꿋이 자리를 지켰고, 본사의 마지막 카드는 낯선 타지로 노동자를 내모는 것이었다. 직원은 고작 셋에 변변한 파티션도 없는 사업장 안 정은을 받아줄 자리는 없었다. 본사에서 내쫓기 위해 보낸 걸 뻔히 아는 마당에 인건비조차 ‘밀어내기’ 당하는 회사의 누구도 그를 곱게 볼 수 없다. 하지만 떠밀린 자리에 더 퇴로는 없었기에 사무직이었던 정은은 졸지에 작업복을 입고 송전탑을 올라야 할 상황에 부닥친다. 인사평가는 다가오고 고소공포증에 감전의 위험까지 도사린 철탑 위의 정은은 죽음과 해고의 이중고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

출처: 다음 영화


해고 위기에 파견직으로 발령된 주인공이 갑작스레 송전탑 전기 노동자가 된 이 영화는 하청업체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정은과, 그의 등장 전까지는 제일 연차가 낮아 나이가 많아도 ‘막내’ 소리를 들었던 ‘충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큰 흐름은 익숙하다. 불가피한 선택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하는 주인공이 조력자의 도움으로 일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상업 영화의 조건을 충족할 만큼 눈길을 끈다. 중요한 것은 익숙한 플롯에 매섭도록 현실적인 노동 문제를 면으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고발적 성격을 유감없이 보이는 영화는 계급적 충돌과 일상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전반적으로 무거운 영화다.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힘을 준 대사와, 차분하면서도 무게가 담긴 대사가 어우러지며 오묘한 대비를 자아내는 영화는 이미지로 관객에게 다가선다. 아찔한 높이의 날카로운 송전탑은 지상과의 거리만큼이나 거세게 관객의 폐부를 찌른다. 어지럽게 얽힌 철근과 몇 가닥 줄에 매달린 노동자, 시리도록 파란 하늘은 복직의 희망이나 동료와의 유대감을 느끼려는 관객에게 어딘가 위태로운 마음을 접을 수 없게 만든다. 거기다 전기 노동자의 파란 작업복은 따뜻함보다는 고공도 지상도 버티기 어려운 노동자의 오갈 데 없는 냉혹한 실상을 드러낸다. 전반에 흐르는 음악은 날카로운 금속의 충돌과 기계의 작동으로 파생되는 소음을 샘플링한 듯 생생하다.


영화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왜 정은은 부모로부터 해고를 당했는지, 동료 혜숙과 사진 속 여성과의 관계는 어떠한가를 묻지 않는다. 다만 여성의 노동 환경을 설명하지 않아도 각자의 삶에 떠올릴 괴로움을 대입할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거대한 현실의 시스템을 지목하기 위해 영화는 개인의 일상을 짐작하게 만든다. 공고한 체제는 복잡하고 정교하다. 원하청의 위계와 노노 갈등, 여성 차별과 노동 구조의 불안 등을 자연스럽게 이어내며 오늘날 한국의 여러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이 르포가 아닌 영화인 까닭은 일관되게 시스템에 종속된 인물의 감정과 행동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사지로 모는 주변의 현실과 그에 되튕기는 정은의 의지는 단호하다. 역할을 맡은 유다인 배우는 외로운 저항에도 감정선을 흩뜨리지 않는다. 일상을 위협하는 해고와 죽음의 두려움에 반응하면서도 끝내 관철하는 단단함은 인상 깊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정은의 삶은 끝내 버티고 남아있을 것이란 일말의 희망을 안겨준다. 서사의 중심은 당연히 정은이지만, 오정세 배우가 연기한 막내 충식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낮에는 송전탑 안전관리,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대리운전으로 잠조차 편히 잘 시간이 없는 그는 안전 장비와 함께 생계를 부양할 책임까지 짊어진 인물이다. 주어진 삶 이상을 안고 있으면서도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그는 영화의 중요한 순간에서 감정적 동요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밀어내야만 곧 살아남게 한 사회에서 뒷전으로 밀린 존엄의 가치를 지적한다. 원청과 하청의 자본금으로, 한때 어울린 동료의 부서 책상으로 형성되는 그 잔혹한 규칙은 적극적으로 누군가의 자리를 밀어내야만 비로소 안전한 내 자리가 생기는 부품화 된 인간의 노동 현실이다. 하지만 송전탑 위의 노동자는 밀려난 후에 다다를 공간이 없다. 고소공포증에 힘들어하던 정은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며 유대관계를 쌓은 충식에게 근무 중 사망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해고였다. 하지만 죽음이 곧 해고가 되고, 버틸 곳이 없던 충식이 밀려나는 순간을 실제로 체험하는 과정은 예상한 감정 이상으로 다가온다.



효율성과 능력주의로 작동되는 구조에 인간성 같은 불필요한 요소는 책임지지 않는 관계의 서명 몇 번으로 마무리된다. 오래 보아도 익숙할 수 없는 모습은 쓰고 버릴 헐값의 무언가로 대표된 생명이 꺼진 와중에도 그대로다. 노동자를 향한 무정한 폭력에 정은은 쓰러지고, 때마침 대규모 정전으로 도시의 모든 불은 꺼진다. 가장 연약하고 여린 곳에 자리한 인간성이 저물어 갈 때, 정은은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그리고 로프에 매달려 송전탑에 오른다. 몇 가구 없는 섬마을의 주민이 어둠 속에 떨지 않기 위해. 사망한 충식이 남긴 삶의 마지막을 위해 두려움을 헤치고 고공 위 정은은 필사적으로 수리를 끝낸다. 더는 일 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기본에 기본마저 이룰 수 없는 수많은 난관은 노동자의 앞에 직면해 있다. 그 ‘외다리 지옥 길’ 난간 위태로운 줄 하나에 매달린 정은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영화는 장엄한 선언 같은 제목을 거꾸로 매달린, 하지만 다시 위를 바라볼 정은의 입으로 말한다. 노동과 죽음이 등치되지 않도록 나를 버티는 저 수 가닥의 희망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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