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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달 Dec 04. 2020

옹골찬 서스펜스로 영리하게 구축한 탈주 스릴러

런(2020), 아니쉬 차간티, 90분

※영화 〈런〉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후 감상하시길 추천드립니다.




2018년 개봉했던 영화 〈서치〉 개봉 당시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영화가 구현할 수 있는 지금까지의 가장 영리한 완성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영화의 모든 신을 PC와 모바일 기기, 인터넷 화면과 SNS, 미디어 플랫폼 등으로 구성한 이 신선한 작품은 이미 첫 시퀀스부터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가정의 전사前事를 컴퓨터를 사용한다면 너무도 익숙한 PC 운영체제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보여주는 연출은 익숙한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는 감독의 이름을 뇌리에 남기기 충분했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그렇게 떠오르는 신예가 되었다. 그의 두 번째 작품 〈런〉이 한국에서 개봉했고, 감독의 첫 작품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영화는 영리하고, 체계적이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출처: 다음 영화

  


〈서치〉와 〈런〉으로 드러나는 감독의 연출력

그의 연출 스타일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서치〉에서 차간티 감독은 구글에서 일했다는 독특한 이력답게 디지털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서스펜스를 쌓아 올렸다. 하지만 감독은 〈런〉에서 모든 온라인 매체와 인터넷을 없애 고립된 세상을 만들었다. 〈서치〉에서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인터넷 시대에 사라지고 왜곡된 본질과 진실의 추적을 그렸다면, 〈런〉은 반대로 모든 소통으로부터 단절된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가는가를 보여준다. 이를 위해 외딴집과 방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사실 그 무엇보다 클로에의 행위를 제한하는 어머니라는 존재로 반경을 가두어 서스펜스를 직조해 간다. 〈서치〉 역시 광활한 미디어와 인터넷을 물리적 매체인 사각의 프레임으로 범위를 한정시켜 가장 가깝다고 알지만 실은 알기 어려운 가족의 진실을 탐구한다.


지나칠 만한 작은 소재에서 영화가 시작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마고의 전화로부터 그의 본모습과 실종의 전말을 풀어내는 데이빗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듯, 이번 영화는 초록색 알약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어머니 다이앤의 실상을 알아가는 클로에의 추리가 중심 스토리다. 삐져나온 의심으로 시작되는 실 한 올이 거대한 사건이라는 옷을 풀어내는 전개 방식은 관객에게 몰입을 유도하며 플롯을 따라가게 만든다.      


또한 생각보다 특별한 이야기 전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잃어버린 딸을 찾는 아버지의 이야기, 제한된 공간에서 어머니의 비밀을 알아가는 딸의 이야기라는 전형적인 스토리로 참신한 연출과 구성을 통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는 재능 있는 감독의 자신감이자 서스펜스 스릴러에 대한 탄탄한 기본기를 증명한다. 스릴러의 뻔한 이야기를 예상하는 관객을 집중시키려면 반전과 단서, 서브플롯이라는 그럴듯한 우회로를 만들어야 한다. 관객은 의심하는 클로에를 따라가며, 혹은 영화 전반의 스토리를 예측하며 이후 상황을 상상한다. 그는 익숙한 플롯에 그렇지 않은 장면을 만들어 관객을 현혹시키는 탁월한 연출 능력을 갖췄다.


거기에 영화는 서스펜스의 거장 스티븐 킹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특히 그의 소설을 찾아본 독자라면 〈미저리〉가 머릿속에 번득인다. 영화 중반에 가면 폐쇄된 공간에 가두기 위해 다리라는 신체기관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설정은 소설 속 애니를 떠올리게 된다. 의도와는 달리 클로에의 삶을 바꿔버린 공범이 된 약사 캐시 베이츠는 영화 〈미저리〉의 주연을 맡은 배우와 동명이인이다. 클로에가 전화의 상대방에게 주소를 말하는 메인 주의 데리 시는 스티븐 킹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다. 스릴러를 이야기하며 빠질 수 없는 스티븐 킹이 대표하는 치밀한 구성과 기법을 닮은 아니쉬 차간티의 오마주는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는 방증이자 그의 영화가 가진 장점이라 할 것이다.


탈주와 성장, 욕망으로부터 달리기

영화를 끝까지 보면 제목 ‘Run’은 영화의 결말과 등장인물의 상황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첫 장면에서 클로에의 증상을 설명하며 등장한 ‘run’은 그의 신체적 상태가 지닌 한계를 보여준다. 또한 어머니 다이앤의 진실을 발견하여 그의 굴레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다이앤은 언제나 도망쳐야 하는 달리기 run를 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은 후 다른 가족의 아이를 납치한 후 범죄자가 된 그는 언제나 도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반대로 클로에는 다이앤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으려면 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이 집에 계속 남아있어야 한다. 다이앤은 죄를 회피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는 딸을 자신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지속적인 가스라이팅과 끔찍한 수단을 이용해 진실을 감춘다.


거짓에 거짓을 더하게 되는 이유인 클로에는 다이앤의 삶을 합리화하는 전리품으로 여긴다. 학교 내 홈스쿨 가족 모임에서 다이앤이 언급하는 딸에 대한 태도는 평범한 가족보다는 생명력 없는 인형과도 같다. 딸의 독립과 성장이 탐탁지 않는 다이앤에게 클로에는 자신이 설계한 삶의 부속품으로써 어떤 오차도 없어야 하며, 마음대로 생을 끊어서도 안 되는 대상이다. 물론 친모라는 이유로 반드시 모성을 획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클로에는 다이앤에게 죽은 아이를 대신한 아이로 시작해 점차 자라며 출산 이전의 그가 선택한 욕망이라는 또 다른 삶을 증명하는 전리품이 된다. 마치 그의 집 마당에 정교한 형태로 만든 정원에서 자라는 작물처럼.


자식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 부모의 이야기를 비틀어 스릴러로 탄생시킨 감독은 어머니와 딸이라는 미묘한 관계성에서 발생하는 의견의 차이와 감정적 혼란이 공포로 다가올 수 있음을 영화로 표현한다. 다이앤의 욕망이라는 통제된 왕국에서 자신의 방향대로 달리는 다이앤의 질주는, 그 안에서 절대 이탈해서는 안 되는 존재인 클로에의 의심과 욕망이라는 억압의 반작용으로 영화에서 폭발한다. 통제가 가능했던 유년기 시절을 지나 다이앤은 전리품이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각종 약물로 병을 창조한 후 통제의 범위를 규정한다. 하지만 부모의 예측과는 달리 성인으로 자라는 자녀는 청소년기의 껍질을 깨고 달려가기 마련이다. 명석하고 사려깊은 사람으로 자란 클로에는 어머니의 구속으로부터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가려한다. 하지만 다이앤은 여전히 자신의 통제를 받는 어린 아이이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신체적 구속은 가능했지만 클로에의 가능성과 도전이라는 정신적 욕망을 가둘 수는 없던 다이앤의 모습은 사랑이라는 허울로 이루어진 부모의 집착과 소유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리한 주인공의 이성적인 서스펜스

많은 스릴러 영화에서는 서스펜스를 갖춘다는 명목으로 주인공의 행동에 무리수를 주입하기도 한다. 소위 ‘고구마 전개’로 관객의 탄식을 자아내는 영화의 아쉬움은 몰입을 깨뜨리는 옥에 티가 된다. 하지만 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이성적인 사고방식으로 납득 가능한 행동을 한다. 특히 주인공 클로에의 행동은 추리 소설 속 탐정의 모습을 닮아있다. 어머니를 의심하며 단서를 찾는 과정에서는 전화 속 남성과 약사의 주변 상황을 파악해 상대의 심리적 변화를 이끌며 원하는 방향으로 단서를 획득한다. 방 안에 갇힌 상황에서 주어진 아이템을 이용해 지붕을 타고 옆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에 담긴 디테일은 주목할 만한 장면이다. 특히 클로에의 신체적 한계와 천식이라는 질병이라는 제약은 위태로운 상태에 제한시간까지 만들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다이앤 역시 클로에가 약으로 가득 찬 창고에서 유기인산염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때 바로 과산화수소로 조치를 시도하는 장면이나 클로에의 방 탈출을 예상한 듯 다른 방의 전화선마저 끊어놓은 장면처럼 영화는 등장인물이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판단을 디테일로 묘사해 현실성을 극대화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등장인물이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활용한다는 점이다. 클로에는 극장에서 나와 약사에게 알약의 종류를 묻는 과정에서 자신의 장애 사실을 이용해 줄 서기를 양보받는다. 다이앤은 가정폭력을 의심한 택배기사 톰이 클로에를 보호하려고 할 때 성인 남성과 청소년이 함께 있다는 사실로 상황을 역전시키려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활용한 상황의 전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자칫 통념에 근거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으로 기존의 인식과 영화적 현실을 전복시키면서 새로운 지점을 찾아낸다. 당사자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언급하고 현재의 통념을 내비치고, 이것이 어떻게 반전의 지점으로 이어지는지를 영화는 적정선을 지키는 어려운 작업을 수행했다. 앞서 다이앤과 톰의 상황에서 평균 이하의 스릴러 영화였다면 당황한 톰이 부모에게 자녀를 인도했을 수도 있겠으나, 톰은 가정폭력의 정황을 인식하고 클로에가 병원까지 가는 동안 자신이 보호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며 물러서지 않는다. (이는 미국의 아동 보호 관련 법률과도 연관이 되어 있는 장면으로, 상대적으로 미흡한 제도의 한국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이후 다이앤의 행동으로 상황이 반전되는 장면은 또 한 층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익숙하고 전형적인 스릴러의 이야기에 영리하게 쌓아 올린 서스펜스와 연출, 탄탄한 구성으로 아쉬움을 상쇄한다. 거기에 전작의 배우와 감독의 특별출연, 그리고 곳곳에 숨겨놓은 이스터에그까지 찾아본다면 이 착실하고 탄탄한 스릴러 영화를 감상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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