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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달 Dec 02. 2020

유명자본주의 시대에 못내 씁쓸한 여성 연대 취준기

페뷸러스(2019), 멜라니 샤르본느, 109분

※영화 〈페뷸러스〉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후 감상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캐나다 감독 멜라니 샤르본느의 ‘페뷸러스’는 미디어와 SNS 시대를 살아가는 세 여성이 우정과 현실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과거 유튜버였던 감독의 20대 시절을 투영한 영화는 자신을 가두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자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거대한 구조는 여전하고, 노동 시장에 유리된 여성들이 남을 뿐이다. 실패를 털고 일어나자는 선언이 지금의 청년에게 근사한 판타지 영화 이상의 의미로 남을 수 있을까.

출처: 다음 영화

인플루언서로 증명되는 유명자본주의 시대

영화 〈페뷸러스〉의 첫 시퀀스에서는 어느 저녁 사무실의 파티 풍경을 저속으로 보여준다. 통유리로 된 사무실을 느리게 지나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점차 정보를 알아가는 관객은 그들이 진행하는 어떤 프로젝트가 좋은 성과를 얻었고, 직원들이 모여 축배와 함께 샴페인을 터트리는 장면을 지켜본다. 그 순간 우리는 튕기듯 무리 밖으로 빠져나오는 한 여성을 확인한다. 다음 장면에서 그의 한쪽 눈은 멍이 들어있고, 찡그리는 표정을 하며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리고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한다.


영화는 첫 장면으로 로리와 클라라가 이후 만나게 되는 첫 계기인 동시에 ‘인기 없는’ 청년 세대인 로리가 앞으로 겪을 좌절과 탈락의 과정을 암시한다. 평범하게 대학을 나와 졸업한 로리는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주류 사회에 편입할 수 없다. 그는 지금의 삶으로부터 새롭게 달라져야만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 다수의 환호를 받는 산업은 개인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날 클라라의 영상을 보며 출근 준비를 하는 화장실 장면은 로리의 향후 삶이 어떻게 바뀔지를 보여준다. 노동 시장의 진입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인기와 구독이라는 사실 말이다.



주인공 로리 가뇽은 팔로워 수가 곧 권력인 잡지사의 인턴으로 일한다. 회의 중 팀장은 구독자 수를 강조하며 회사 공식 계정보다 몇 곱절 많은 소셜미디어 구독자 수를 가진 인플루언서 ‘클라라 다이아몬드’와 비교한다. 그는 뷰티와 일상을 주제로 한 방송으로 수백 만의 구독자를 거느리며 화장품 회사의 모델까지 오른 소셜미디어 스타다. 이들은 영화의 배경인 캐나다만의 현상이 아니다.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의 대중문화 흐름은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를 지나친 지 오래다. 이제 유명세는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며 Social Currency는 가능성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브랜드와의 협업과 인스타그램의 태그 달기tagging, 조회 수와 구독자 수로 관심은 곧 돈이 된다. 이는 능력을 인정받아 돈을 번다는, 직업이 지닌 전통적 개념에서 한참 벗어난 새로운 직업의 형태를 보여준다.

 

 클라라는 유명세를 지속하기 위해 소위 비주류적 마케팅도 서슴지 않는다. 연애와 이별, 재결합 등의 사생활을 영상으로 찍어 미디어의 조명을 받고 구독자의 집중을 요구한다. 유명세를 통해 돈을 버는 개념의 직업인은 전문성보다 유명하다는 이유가 곧 직업의 이유가 된다. 이는 능력과 직업이 동일 선상에 있다는 낡은 관념을 부수며, 다시 시장의 크기로 증명한다. 물론 ‘나’라는 콘텐츠를 마케팅한 끝에 인기를 얻기도 하는 소셜 스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유명세의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 정답은 아니다. 이미 과밀할 대로 과밀한 소셜미디어 시장에서 소비자는 더는 콘텐츠의 유용성이나 정보 전달력만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이 업계에는 하루에도 수십만 개의 유용하고, 자극적이고, 귀여운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결국 그들 중 유명해지는 콘텐츠는 소수이며, 그 기준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종잡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입소문이나 커뮤니티의 반향 등으로 인기를 얻은 인플루언서의 기준이 있다면 결국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자극성’ 때문이다. 과거 페리스 힐튼이나 킴 카다시안 등의 스타들은 성관계 비디오나 노출 사진 등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 유출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슈의 진위나 부정적 효과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파급력만이 중요하다. 일반인에게는 삶 전체의 트라우마로 작용할 만한 사건이지만 인플루언서는 이 또한 유명세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유명자본주의 시대는 여러 가치를 제치고 유명함을 맨 앞에 내세우며 수익을 끌어모은다.


경쾌한 페미니즘으로 영화를 감싸다

영화는 여성 인플루언서가 대상화된 자신의 삶을 재고하는 동시에 일반인이 주류 문화의 흐름에서 스스로가 대상화되는 과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클라라는 펜트하우스에 살며 10대 여성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의 신체는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상품이자 디스플레이의 대상으로 포장된다. 그와 반대편에 있는 인물인 엘리는 페미니스트로 ‘코르셋’을 전시하는 여성의 대상화를 비판하며 스스로의 몸 그대로를 인정하고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끊임없이 거부한다. 두 인물의 중간에서 평범한 청춘을 대변하는 로리는 전통적인 직업인의 삶에서 새로운 선택지를 받는다. 우연한 기회에 클라라의 절친이 된 인턴 로리는 유명인과의 친분으로 유명인이 된다. (이 또한 유명인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유명해질 뿐 그의 능력과는 무관하다) 그의 글쓰기 능력보다 정규직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팔로워 수만 명을 모아야 한다는 사수의 말은 유명과 능력이 전도된 현상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재능은 더는 직업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 유명세가 있어야 재능이 증명되며, 심지어 재능이 없어도 된다. 클라라는 유명하다는 이유로 로리가 원했던 에디터의 기회를 너무도 쉽게 얻는다.

 

하지만 영화는 여성의 갈등이 분열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철저히 지양한다. 페미니즘에 특정한 정답을 규정하지 않고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자매애로 연대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엘리는 클라라의 SNS 활동에 번번이 딴지를 걸지만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며 페미니스트 파티에 초대하기까지 한다. 또한 클라라와 같은 길을 가려는 로리를 비판하지만 배척하지 않고 서로의 삶을 인정한다. 클라라는 대중성에 가려 깨닫지 못한 신체의 대상화를 인정하고 대중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로리 역시 페미니스트이자 뷰티 영상과 산업에 편입하고자 한다. 페미니즘의 무정형성은 모두의 다름을 인정하는 자유로부터 나온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우정과 사랑은 느슨한 연대와 자유의 정신에 담겨 있다.



우리의 멋진 실패사라는 해맑은 판타지

영화 속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페미니즘은 경쾌하고 가볍다. 하지만 가벼움의 대가는 결말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우정과 연대라는 아름다운 환상에 영화는 동화가 되고, 현실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미디어 콘텐츠를 다루는 영화 속 회사와 산업은 명백히 여성 차별적 시선과 성 상품화, 대상화로 작동된다. 이에 저항하는 사람은 가차 없이 교체된다. 클라라가 로리로 대체되듯 로리의 빈자리는 금세 다른 여성으로 채워질 것이다. 유명자본주의라는 공고한 시스템에 생존을 바라는 여성들은 너무도 절박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플루언서의 현실과 SNS 시대 페미니즘의 고민과 여성의 연대, 냉랭한 현실 속 사랑과 우정이 존재한다는 교훈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월세를 밀려 어머니에게 돈을 빌리고 번번이 취업에서 고배를 마시는 주인공의 삶에 주어진 일확천금의 기회가, 신념과 반성으로 포기할 수 있는 가치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클라라가 페미니스트 모임에서 각성의 계기를 찾고 파티장에서 자신의 몸 자체를 인정하고 이를 보여준 제스처는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의 행위에 진정성을 갖추려면 조금 더 진지할 필요가 있었다. 사유의 과정 없이는 탈코르셋의 과정은 단지 '힙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이는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의 정체성과 현상과 구조의 사유라는 두 지점 사이 타협과 균형을 정하는 감독의 문제다. 웃음을 자아내기 위한 영화는 삶의 다양한 영역을 다루는 과정에서 일부 생략과 삭제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공고한 차별과 외부적 강박으로 만들어진 문화에서 변화를 바라는 등장인물의 선택은 중요한 만큼 조금 더 진정성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 일상의 여성들은 치열한 현실과 고민을 경험하고, 결정 이후의 결과에 언제나 공포와 불안이라는 현실 직면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물의 선택을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지만, 그가 충분히 고민한 흔적을 두지 않을 만큼 쉽게 결정할 일 역시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줬어야 했다.


여성의 성 상품화를 부추기는 기성 산업에서 축출된 로리와 클라라는 결국 같은 자리에 앉는다. 소파 위 세 명 중 ‘취뽀’에 성공한 이는 엘리 한 명뿐이다. 그 역시도 위태로운 계약직으로 말이다. 이는 앞서 첫 장면의 지점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않았다. 결국 산업은 누구의 삶도 주목하지 않은 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작동한다. 결국 자본 시장에서 이탈한 여성은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경쾌한 페미니즘의 해맑은 우정이 현실의 무게를 해결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는 영화의 의도는 좋다. 하지만 여전히 특정 업계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SNS에 글을 썼다는 이유로, 심지어 취지를 '유추'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의 사상을 검증받고 해고의 위험에 처하는 국가에 살고 있는 시민의 입장에서 우정이나 신념은 안타깝지만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MZ세대의 실패는 일상이 되었고, 영화 속 실패와 유명은 쌍곡선을 흐른다. 이 젊은 청춘들에게 영화의 결말은 아직 새드엔딩이다. 그리고 이를 떠안는 가치는 위태로운 페미니즘과 우정이다.


 


인플루언서에 열광하고, SNS의 스토리가 곧 돈인 시대에 여성의 상품화와 대상화는 여전히 공고하다. 설령 엘리 외에도 클라라와 로리가 영화 말미의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뜨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허름한 빌라 옥상에서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세 사람을 보고 있자면 나와는 의미가 없는 캐나다의 청년 복지 제도와 저성장의 늪, 정치환경과 취업난을 고민하게 된다. 물론 20대 시절을 겪었던 감독은 노력과 재능을 인정받아 CF 감독이 되었고, 첫 장편 영화를 찍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의 성공과 힘들었을 과정은 짐작하나, 아마 한국의 청년들은 수십 장의 이력서와 자격증, 채용 수험서를 앞에 두고 스크린 속 소파에 앉은 캐나다 청년의 판타지적 순간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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