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패키지여행의 완전한 승리

편견

by 정윤희

해외여행을 하는 방식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하나 다 알아보고 취향 것 선택하는 자유여행 그리고 여행사가 짜준 스케줄 아래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대한의 것을 관광하는 패키지여행. 나는 이 두 유형을 다 조금씩 경험해 보았는데, 각자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더 낫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선호하는 여행을 묻는다면 ‘자유여행’을 꼽을 것이다. 단지 취향에 더 적합하다는 게 그 이유이다.




자유여행의 묘미는 단연 ‘자유’이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무르는 일. 더 머무르고 싶은 곳이 생겨 다음 일정을 과감히 포기하는 일. 여행책자나 블로그가 알려주지 않은, 우연히 마주한 곳, 그곳을 사랑하는 일. 계획의 틀에서 약간 어긋나는 이 모든 자유를 좋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연한 곳을 발견하거나 좋은 만큼 머무르기를 선택하는 그 과정 속에서 진정으로 그 나라, 그 도시와 가까워짐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이게 여행이지!’




유럽의 한 기차역에서 눈길을 두었던, 중노년쯤 되어 보이던 부부가 떠오른다. 한국이라면 여행사가 마련한 관광버스에 몸을 실어야 할 것 같은 연령대. 하지만 그들은 한 손에 종이지도를 들고, 한 손으로는 각자 캐리어를 끌고 있었으며, 계단을 마주하자 남편은 아내의 캐리어와 자신의 캐리어 두 개를 양손에 번쩍 들고 계단을 올랐다. 그 몇 초 상관에 불과한 장면은 여러 의미를 담았다. 자연스럽게 종이지도를 들고 있는 모습은 그들이 스마트폰이 생겨나기 전부터 익숙하게 자유여행을 다녔음을 알 수 있었고, 그들이 끈 캐리어에는 나이가 든 현재도 젊은이들 도움 없이 캐리어를 끌만큼 긴 여정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뜻이라 느껴졌다. 젊어서부터 해온 여행 내공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랄까? 또 이런 상상을 하게 했다. 여행하는 내내 계단을 마주할 때마다 남편은 아내의 무거운 캐리어를 말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드는 모습, 여행 중 생겨날 돌발 상황과 위기를 서로 의지하며 헤쳐나 갈 모습. 그들의 여행 역사와 그로 인한 여행 호흡이 멋져 보였다.




좋은 건 원래 같이 공유하고 싶은 법이니까, 패키지여행만 고수하던 부모님께 자유여행을 해 보자고 권해왔었다. 그런 내 의견에 엄마는 매번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 그 이유들은 이러했다.




“아휴... 찾아다니는 거 골치 아프다.”

“가방 끌고 돌아다니고, 한참 걷고 그런 거 못한다.”


“젊은 너희는 앞으로 살날이 많아 또 가서 볼 기회가 있겠지만, 우리는 이제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까 간 김에 최대한 많이 보고 와야 한다.”




엄마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유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여행의 깊이를 느끼게 해 주고 싶어 틈틈이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중노년쯤 되어 보이던 부부를 보고 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는데도 지도 들고 가방 끌고 여행 가더라. 할 수 있다. 쉬엄쉬엄 쉬고 싶은 만큼 쉬어가면서 다니니까 오히려 여유 있고 덜 피곤할지도 모른다.”




그때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아이고 그 사람들은 젊어서부터 늘 여행 다니고 했으니까 그 나이에도 하는 거지. 우리는 젊었을 때 그렇게 안 해봐서 못한다. 그리고 이제 와서 막 뭐 찾아보고 조사하고 계획 짜고 그런 거 안 하련다.”




유럽을 경험하기 전 유럽 사람들의 삶에 대한 편견은 이런 거였다. '여유롭고 풍족한 삶' 그리고 '수십 번의 해외여행'.



한 달씩이나 되는 여름휴가를 맞이하는 그들을 보며 매년 옆 나라들을 골라 다니겠거니 생각했다. 풍족한 삶에 풍족한 휴가 그리고 가까이 붙어있는 외국까지. 해외여행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당연시 여겼다. 또 긴 시간 풍족함을 누리며 살아온 유럽인들은 보다 일찍부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상식이 ‘해외여행’에 대한 편견의 이유로 작용했다.




“제시카 너는 외국 어디 가 봤어?”




어릴 때부터 당연히 많이 해 봤을 여행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제시카는 삼십 대 중반의 이탈리아인이니, 부모님과 했을 여행, 친구들과 했을 여행, 혹시 더 씩씩한 여성이라면 혼자서 떠났을 여행 등 이미 여러 유형의 여행을 하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도 한 번쯤은 가 보았겠지 싶었다.




“난 이탈리아를 여행했어.”




돌아온 제시카의 대답은 내 언어능력에 대한 의심을 품게 했다. '혹시 내가 한 질문이 잘못되었거나 그녀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건 아닐까.' 다시 한번 천천히 머릿속에 언어를 가다듬고 질문을 던졌다.




“다른 나라 어디에 여행 가봤어?”


“이탈리아만 다녔어.”


“이탈리아? 단지 이탈리아만 다녔어?”


“응.”




쨍그랑,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 성인 모두가 해외를 가 본 건 아니구나.’




그리고 대한민국 여행사에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짜낸 환상의 스케줄, 그 수고로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제시카는 어디 다녀와 봤냐는 질문을 역으로 하고, 나라를 하나하나 손꼽아 말하고 있는 나를 부러움과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어쩐지 지난 내 여행들이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혹시 상대적 박탈감? 같은걸 느끼진 않을까 하는 오지랖도 발동했다. 그녀가 이런 내 여행력을 너무 많이 부러워하지 않길 바랐다.




‘이탈리아어를 좀 더 잘하게 되면 개수로 승부 본 내 여행력의 비결에 대해 설명해 줘야지.’




누군가는 내가 만난 제시카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냐라고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이탈리아에서 ‘여권’이라는 존재는 꽤 특별한 소지품이라는 거다. 물론 EU국 간에는 시민권만으로 왕래가 가능하다는 이유가 이 현상에 한 원인이겠지만, 휴식과 여행을 인생에서 값진 것으로 여기는 유럽인들에게 여권 소지자가 흔치 않다는 사실, 그 사실은 한 편견을 깨부수는 일을 좀 더 확실시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