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사람 사는 모습 다 비슷하다고 하지만 ‘문화’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같은 한국 땅에서도 지역마다, 동네마다, 집안마다 문화 차이를 경험하니, 동양도 아닌 서양과의 차이는 오죽할까. 그럼에도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며 이해할 수 있었거나, ‘그렇구나.’하며 이유를 따지지 않고 받아 들 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코로나 19 바이러스’ 앞에서는 이해도, 이유 없는 받아들임도 할 수 없었다. 마스크 문제는 논쟁거리도 안될 만큼 당연한 대책이라 생각했는데, 마스크 착용 안을 문제 삼아 거부 시위가 일어난다는 뉴스는 그 자체로 문화 차이의 한계를 절실히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해도 좁힐 수 없는 경지가 있다고 단정 짓던 2020년이었다. 하지만 그 ‘다름’이 지난 이탈리아 생활을 살아 숨 쉬게 했고, 그 중심에는 ‘자유’가 있었다.
*일상 속 ‘이건 뉴스감이다.’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 뉴스에 나오는 일은 일반적이기보다 별난 일이기 때문일 경우가 많다. 그렇듯 마스크를 거부하는 모습이 서양인들 전부의 의견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그 찬반 논쟁의 비율이 우리보다 조금 더 팽팽할 뿐. 몇 안 되지만 내가 만난 서양인들 모두는 ‘마스크를 껴야 한다.’는 쪽에 의견을 기울였고, 마스크 착용을 반대하는 이들을 보고 ‘미쳤다.’라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 대부분은 개성을 억압하는 학교와 극성인 부모의 울타리에 갇혀 오래도록 엄격한 통제 속에 자란다. 나는 이런 사회에서 교칙을 순순히 잘 지키는 학생이었고, 운이 좋게도 부모님은 나의 색을 존중해 주시는 분들이셔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거야.'라며 다져낸 의지도, 도덕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실로 대부분을 그렇게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비교적 통제에 대한 스트레스는 크지 않았다. 비교적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아온 것이다. 이는 다양한 종류의 통제 속에서 고통받는 여러 사람들을 경험하며 그동안 누려온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자유에 대한 갈망이 가슴속에서 해소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자유’를 많이 외치며 살아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롭고 싶다.’라고 틈만 나면 말하던 나를 보고, 어떤 자유를 원하냐고 물어올 땐,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느 구석이 가슴을 답답하게 죄여 오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행을 준비하며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면, 그건 자신감도 아니고, 기대나 설렘도 아닌, 바로 마음속에 당당히 자리 잡힌 이 한 줄이었을 거다.
‘얼굴이 무기다.’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차이보다 더 좁힐 수 없는 차이는 바로 외모 아니겠는가. 그들 눈에 같은 종족으로는 보일 수 없는 처지이니 그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무지함에 당당하기로 했다. 못하는 게 당연하고, 모르는 게 당연한 얼굴이니까.
말이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스스럼없이 입을 떼었다. 얼마 채워놓지 못한 언어였지만, 인사말을 할 줄 아는 것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며 당당하게 틀리고 당당하게 서툴렀다. 행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대로 당당하게 행동했다. 얼굴이 무기이니까. 누가 보아도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이니까. 그리고 늘 이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내 눈에 그들의 행동이 달라 보일 때마다 문화가 달라서 인가?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 눈에 내 행동이 좀 이상해 보인다면 문화가 달라서 인가? 하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비로소
“저는 이곳에 와서 더 자유로워졌어요.”
‘자유’를 말하였다.
그런데 돌아보면 마음 가는 대로 한 행동이 한국에서 한 행동과 뭐가 그렇게 달랐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별한 행동은 굳이 없었던 것 같다.
한국에는 '보이기'를 의식하는 심리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는 사람도 ‘남’이라는 존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기는 쉽지 않을 거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거야.’라고 말하며 의지대로 선택하며 살아온 나 자신도 마찬 가지이다. 교칙을 어기지 않고, 학교 외 생활에서도 어른들에게 FM(필드 매뉴얼의 약자, ‘정석대로 한다.’의 의미로 사용됨.)이라고 칭찬받는 학생으로 일생을 보내며, 이토록 바르게 행동한대에는 ‘남’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쩌면 한국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고도 자유에 대한 갈증을 호소하던 가슴속에는 ‘시선으로부터의 자유’가 들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관심 없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는 서양과 그 땅에 어울리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내가 합작을 이루었다. 가슴속에 날개가 달렸다. 나는 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