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은 노화와 관련이 없다?

생각의 단순화

by 정윤희

무엇하나 또렷이 잘하는 게 없다고 울부짖는 인생이지만, 유일하게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경험에 대한 기억’이다. 그 순간 했던 말들과 그 말을 할 때 상대의 의상, 취하고 있던 자세 등 사소한 것까지 전부 기억 속에 짊어지고 산다. 이러한 능력은 삶에서 굳이 불편할 것도 그렇다고 더 편할 것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자부심을 안고 살아왔다. 비상하리 만큼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에 노화가 찾아왔다면?




예전 같지 못한 기억력에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나도 늙는구나. 우습지만 이런 감정을 처음 느낀 건 고등학생 때였고, 막 이십 대가 돼서는 더 큰 노화가 찾아왔음을 느껴야 했다. 그나마 잘하던 것도 못하게 되다니.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친구에게 과거 기억력에 대한 무용담을 섞어가며 하소연을 했더니, 그는 ‘지금도 네 기억력에 소름이 돋으니 걱정 마.’라는 말로 나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어?’.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 ‘몰라 기억 안 나.’라는 말들이 보다 자주 튀어나올 때는 상실감을 외면할 수 없었다.




중학생 때쯤인가 어른들의 한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A아주머니는 아들과 함께 영어단어를 공부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들의 암기력을 따라갈 수가 없겠더라며 자신의 못난 머리를 탓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던 B아주머니는 우리 어른들은 생각해야 할게 많아서 애들 머리를 못 따라가는 거라고 하셨다. 애들은 생각할게 많이 없지 않냐라면서 말이다.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머리 탓도 생각 양 탓도 아닌, 그냥 나이가 들어서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 그 대화를 다시 상기시켜보자면 어쩐지 B아주머니 말에 순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고등학생 때도 이십 대가 되어서도 그리고 지금도 머리는 아직 젊었노라고, 단지 해야 할 생각이, 기필코 담아야 할 것들이 보다 더 많아져서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막 성인의 이름표를 달고는 삶의 올바른 방향성에 대해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세상은 십 대 때 입고 온 순수함이라는 옷을 벗겨내기 바빴고, 나는 그 옷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투쟁했다. 그 투쟁이 무색해지도록 옷은 비참히 찢겨나갔다. 순순히 새 옷을 인정하고 입기를 허용해야 했다. 그리고는 어떤 새 옷을 골라 입어야 하는 건지 혼란 속을 헤매야 했다. 어려웠고, 좀 아팠다. 반면 새롭기도 재밌기도 했는데, 어쨌든 끝없이 밀려들어오는 옷 더미 속을 허우적거리며 난생처음 겪는 다채로운 옷을 많이도 걸쳤다. 그리고 걸친 옷들 만큼이나 어느 한곳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졌음을 느꼈다.




이탈리아라는 행운이 떨어진 건, 화려한 성인기의 롤러코스터를 정신없이 타고 있을 때였다. 좀 더 명확히, 롤러코스터의 재미가 끝나고 멀미가 몰려올 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땅에서 급격히 안정되고 평화로워졌음 느꼈기 때문이다. 고작 12시간 만에 눈앞에 펼쳐진 외국 생활은 한국생활과 상반될 만큼 단조롭고 단순했다. 모든 걸음걸음이 낯설어졌고, 말 수도 현저히 줄었으며, 복작거렸던 인간관계도 단절되다시피 되어버린 게 그 이유였으리라.




‘수업을 받으러 다니고, 개인 공부하기. 때가 되면 밥을 해 먹고, 밀린 집안일을 하기. 간간히 여행을 다니고, 날씨 느끼고, 자연 느끼기. 어쩌다 알게 된 한국인과 가벼운 소통을 하고, 정보 나누기.’




12시간이 바꿔놓은 삶은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달도. 이쯤에서 혹시 누군가 이 잔잔한 생활을 보고 지루하거나 외롭지 않았을까 걱정했다면 그 걱정을 접기를 추천한다. 머릿속을 괴롭혔던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생각들이 사라졌고, 그 공간에 여유로운 생각과 아름다운 감성들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삶이 단순화되니 작은 것에도 모든 감각을 곤두 세워 집중하며 마음을 다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냥 지나쳤을 주변의 사소한 것들까지 감수성을 자극했다. 장만 보고와도 무언가 가슴에 남은 듯했으니까. 또 쇠퇴되어만 갔던 ‘기억력’이 부활하고 있음을 느꼈다. 상대와 나눴던 많은 순간과 사소한 한마디, 한마디가 어떠한 울림, 울림이 되어 가슴속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로 떠나오기 한 두 달 전, 나는 성인기의 롤러코스터가 이제 그만 멀미가 날 것 같았고, 이탈리아에 관한 모든 절차가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제대로 준비되고 있는 건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공중에 붕 떠버린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떠난답시고 인생에서 알아 온 온갖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는 그때 그들과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이야기의 결론은 뭐였는지, 핵심은 뭐였는지, 그 모든 것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인생에서 기억이 가장 많이 쇠퇴한 순간이었다.




처음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타고 현재가 오기까지 몇 해의 시간이 지났다. 기억력은 오히려 회복되었고 현재를 꼼꼼히 담는다. 기억이란 게 정말 노화보다 생각의 복잡성과 더 큰 연관이 있는 걸까? 십 대 아들과 사십 대 엄마, 그들의 암기력 차이에 대한 원인을 노화가 아닌 생각의 양에서 찾은 B아주머니의 의견처럼 말이다.




모든 나이 대는 그 나름 고민과 걱정으로 생각을 복잡하게 채워내기 마련이지만, 공부와 입시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고등학생 때보다 진로 그리고 신문물까지 받아들이기 바빴던 이십 대의 머릿속이 더욱 복잡했다. 삼십 대는 더 많은 걸 책임져야 할 거고, 사십 대는 더, 오십 대는 더욱더,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살아갈수록 삶이 더 복잡해진다는 이유가, 그 이유로 인해,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기억의 폭이 좁아지는 건 아닐까?




이 글을 본 의학계에서는 어떤 의견을 내놓을지 추측해 낼 상식이 없다. 하지만 개인적인 임상시험 결과로 ‘너무 많은걸 부여잡거나 짊어지려고 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담긴다.’라는 의견을 내놓으려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소하고도 사소한 것들이 준, 그 순간의 감각들이 이 삶에서 가진 무겁고 벅찬 생각들보다 값진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닐 생각들을 과감히 단순화시켜버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답 없는 인생보다 지금 현재 공존하는 주변의 울림들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하고, 마음을 다하는, ‘기억력 왕’ 그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다.




‘밀라노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해 버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