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자격지심
밀라노 외각에 있는 말펜사 공항에서 택시를 탔다. 일부러 더 유창하게 인사를 하고, 더 빠르게 목적지에 가자는 문장을 뱉었다. 나 여기 좀 알아. 얼굴은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정신은 똑똑히 차려냈다. 공항에서부터 혼자 택시를 타고 밀라노로 들어오는 1시간 동안 눈에 불을 켜고 도로를 살폈다. 그리고 이유도 없이 택시에게 기분이 나쁜 채로 앉아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면 데이터 충전을 하지 못해 껍데기에 불과한 스마트 폰과 외국인이라는 나의 존재 정도,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러니까 택시가 기분 나쁘게 한 일은 굳이 없었음에도 저 이유들이 나쁜 기분을 택시에 쏟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만만한 외국인 심지어 젊은 동양인 여성이었고, 구글 맵으로 경로와 현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있었다. 또 1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방금 전 공항 밖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기사님에게 오로지 맡겨야 했다. 빙빙 둘러가도 속은 지도 모른 채 그저 당해야 할 처지에 놓인 거다. 할 수 있는 건 여유가 넘치는 척 앉아 있으면서도 눈에 불을 켜고 표지판을 찾아 읽는 방법뿐이었다(그렇다고 길을 아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니, 밀라노에 진입한 지 꽤 됐는데 돌아도 돌아도 도착을 안 하는 거야. 괜히 기분 나빠 죽을 뻔했어. 돌아가는 거 같아서. 이건 완전히 내 자격지심인 거지.”
결국 상식을 넘지 않은 시간과 금액을 지불하고 나서야 기사님을 신뢰하고 자격지심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이따금씩 찾아오는 긴장되는 순간들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어 웃펐다(웃기고 슬프다.). 외국인으로서의 자격지심은 떨칠 수 없는 걸까?
여행자든 이민자든 유학생이든 어떤 이유가 되었든 외국인 입장에 처하게 되면 가장 먼저 속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경계를 늦추지 않게 된다. 말도 문화도 아무것도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악한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 약자 중에 약자일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자격지심을 품고 그들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의심하는 동안 스스로에게 필요 이상의 상처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손님이 왕이다라는 개념 아래 친절이라는 대접을 한껏 받던 우리는 자기 할 일만 따박따박하는 무뚝뚝한 직원(예를 들면 무표정으로 말없이 잔돈을 대충 내어 주는 직원)의 불친절한 대접에 상처를 입는다. 그들의 의도는 잘 모르나 단지 그들의 태도에 대해 기분 나빠하는 것이 아닌 외국인이라서 무시당하나 하는 기분이 덤으로 따라붙어 괜히 필요 이상 기분을 나빠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이들에게 손님이 왕이다 라는 개념은 가지고 있지 않다. 손님과 직원이 동등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취하는 친절은 고객에 대한 눈치가 아닌 개인적인 직업의식에 의한 것이고, 불친절을 표하던 직원은 단지 그런 사람, 그 사람의 성격이었을 확률이, 국적 불문 모두에게 그럴 사람일 확률이 높다. 즉, 나의 인종보다 그 사람의 개인적인 기분에 의한 태도였을 확률이 높았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각종 국적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밀라노에서 손님마다 태도를 바꿔대는 일이 어쩌면 더 피곤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생각이 사실과 닮은 부분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보다 더 악하게 여기며 지나왔던가.
물론 겪어 온 불친절 중 차별적 대우라는 의도가 섞인 대접도 분명 있었을 테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자격지심 또한 순수한 의도를 한 마음을 꽤 많이도 의심하게 했을 것이며 그에 따른 우리의 태도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동등하게 여기는 것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티는 내지 않았지만 괜히 속으로 기분 나쁘게 여기며 의심을 품었던 택시 기사님과 괜히 오해를 해 쌀쌀맞게 돌아서는 나를 맞이해야 했던 현지인들에게 사과의 마음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