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아를 모르시나요?

삶의 질과 가치

by 정윤희

브로콜리가 든 크림 파스타가 먹고 싶어서 토요일만 손꼽아 기다렸다. 토요일 오전이면 집 옆에는 큰 장이 열리는데, 슈퍼보다 싼 값과 질 높은 식재료로 급한 재료가 아니면 웬만큼 토요일에 해결하려고 한다. 드디어 토요일이 왔고 늘 가는 채소가게에 가서 제일 먼저 브로콜리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시장 아저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브로콜리?’하며 되묻는다. 내 발음이 낯선 줄 알고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을 하는데, 아저씨가 ‘No~(없다는 뜻)’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저렴하게 사려고 일부러 장 서는 날까지 기다렸는데 없다니... 상실감을 감추고 다시 한번 ‘없다고?’하고 되묻는 나에게 뒤에 줄 서있던 할머니가 황당한 제스처를 하며 ‘지금 이 시기에는 없어.’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러고 보니 시장 아저씨도 그냥 없다고 대답한 게 아니라 황당함을 참아내며 없다고 했던 것도 같다. 허탕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너넨 하우스라는 거 없어?’라며 투덜거렸지만, 사실 이 나라는 제철에 맞게 사는 나라이기에 브로콜리 철을 몰랐던 내 문제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지만 브로콜리도 철이 있겠구나.



이탈리아는 제철을 잘 지킨다. 이탈리아에 온 첫 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 누군가 날이 선선해졌는데도 아직 집에 모기가 있다고 불편함을 호소하며 모기향을 구하러 슈퍼에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 붙이는 말이 ‘슈퍼에 있을지 모르겠어. 여기는 조금만 지나면 금방 쏙 넣어버려.’였다. 그땐 그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조금 더 살아보니 그게 그 말이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는 물건도 계절에 맞게 판매하고 계절이 지나면 다 집어넣기 때문에 여름이 끝나면 금방 모기향을 집어넣고 안 판다는 말이었다. 막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여름과 가을 그 사이쯤이었지만 모기향이 없을까 봐 불안할 만큼 이탈리아는 이럴 때 단호하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카페에 가서 어떤 커피를 주문했는데 없다는 게 아닌가. 그때도 재차 ‘없다고?’하고 물었더니, 바리스타는 ‘그건 겨울에 먹는 커피야.’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며 다른 커피를 추천해 주었다. 커피도 계절이 있다니. 어쩐지 처음 보는 커피가 있길래 호기심 삼아 먹어보고는 이걸 왜 이제 먹어봤지 생각했었는데, 그게 다 여름 커피어서 그랬던 거였다. 단지 여름이 오지 않아서 알 수도 먹을 수도 없었을 뿐이었던 그런 커피.



제철에 사는 이탈리아가 계절용 물건들을 구석에 몇 개라도 배치해 두는 너그러움을 발휘하지 않고, 냉철하게 쏙 집어넣는 건 조금 야속하다. 하지만 제철 음식을 먹으면서 사는 이들을 보며 순리에 따르며 사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모든 계절에 모든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다는 사실과 기술의 무궁한 발전에 감탄하며 그를 대단히 여겼지만, 알고 보면 자연의 리듬대로 제철음식을 먹는 게 가장 건강하게 먹고사는 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또 그 가장 절정에 치닫아 있는 그 풍미만을 온전히 느끼는 것, 그 순간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것, 다시 계절이 돌아 그걸 맛보았을 때 그래 이 맛이야 하며 최고치를 느껴보는 것이 어쩌면 세상을 더 풍부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법일 지도 모른다.



커피도 마찬가지이다. 커피 취향도 일 년 내내 마음대로 못 즐겨? 싶다가도 커피를 만든 사람은 그 온도에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그 마음이 문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출처 없는 추측을 해 본다. 그리고 이들이 생각하는 삶의 질, 그 가치에 대한 생각 또한 생각해 보게 된다. 뭐든 다 이유가 있나니, 하고 순리대로 본래의 뜻에 맞춰 먹고 느끼는 것이 가장 고급 지게 최고의 가치를 누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데, 너희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무리 추워도 아이스만 고집한다는 것을 뜻함.) 같은 가치는 모르겠네? 뭐든 다 이유가 있나니. 얼죽아라는 이름이 생길 만큼 얼죽아파가 많은 거 또한 이유가 있겠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