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람보다 더 느린 사람 2

이탈리아 사람은 결코 느리지 않다.

by 정윤희

이탈리아에서 좀 살아봤다 하는 한국 사람은 죄다 속도에 대한 썰을 몇 가지씩 가지고 있다.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점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탈리아는 이토록 느리다.’라는 주제로 썰을 나열 해 주었다. 한 동안은 이 곳의 느림에 대해 백번은 더 들어야 했던 거 같다.




“내가 기차를 얼마나 기다렸냐면....”


“메일을 세 번이나 보냈는데 아직도 답장이 없어.”


“택배가 몇 개월 만에 도착했어.”


“체류허가증이 늦게 나와서 나오자마자 다시 갱신 신청을 해야 했어.”


“수리공이 며칠째 안 와.”




이 모든 말이 사실이다. 기차는 제시간에 도착하면 기뻐해야 할 만큼 연착이 당연하고, 기차역 전광판에서 2시간, 3시간 연착된 기차를 발견하는 일도 체류기간이 육 개월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다. 이 곳 이탈리아는 주로 전화가 아닌 메일로 문의하는 게 보편화되어 있는데, 답장을 받기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같은 메일을 보내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에서 보낸 택배가 육 개월 만에 비로소 주인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고, 체류허가증이 두 달 만에 나와 일이 잘 풀린다며 기뻐했었다. 수리공을 부르면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고, 자연스레 며칠씩 약속은 밀린다. 이탈리아에 한 번쯤 살아본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게 사실이야?’하고 의심하거나 다소 특별한 경험담이라고 여기진 않을 거다. 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이탈리아는 '느린 나라'로 소문이 났고, 나라는 사람은 '느린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타고나기를 ‘매우 느림’으로 태어나 평생을 빨리빨리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허둥대며 숨 가쁘게 그러나 더디고 굼뜨게 살았다. 그런 사람이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탈리아와 호흡이 찰떡궁합 일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매우 느림’ 출신도 몇 번이고 늘어나는 기차 연착 시간에 전광판을 보며 ‘아, 시간 또 늘었다.’를 외쳐봤고, 같은 메일을 같은 사람에게 보내는 일을 수 십 번 해 봤다. 느리게 살아왔지만 자라온 세상은 빨리 돌아가서 인지 조급하게 군적도 생각보다 많았다.




한국에서는 늦어도 2-3일이면 해결될 세탁물이 이탈리아에서는 빠르면 7일, 보통은 10일씩이나 걸렸다. 사실상 급하지 않은데 늦게 준다고 하니 어쩐지 급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세탁소 사장님과 약속 날짜를 잡을 때마다 2-3일씩 더 빨리는 안 되냐며 부탁을 했다. 그러면 10일 뒤 던 약속이 8-9일 뒤로 줄었고, 7일 뒤 던 약속이 6일 후쯤으로 줄었다. 꼭 입어야 할 날이 있는 급한 옷도 아닌데 굳이 늘 앞당겼다. 약속 날에 세탁물을 찾으러 가면 준비가 덜 되어 다시 약속을 잡아야 하는 날도 간혹 있었다. 그런 날이면 헛걸음을 했다는 사실에 좀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시간을 당겨 놓아야 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곤 이탈리아 속도를 다룰 줄 안다며 뿌듯해했다. 그날도 세탁물을 맡기고 당연하게 며칠을 앞 당겨 약속을 잡아 줄 수 없냐고 협상했다.




“너는 왜 항상 빨리 해 달라는 거야?”




외국인이라고 늘 또박또박 천천히 설명해 주고, 늘 웃으며 친절했던 세탁소 아주머니가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당황했지만 딱히 할 말도 이유도 없어 그냥 사과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에 띄는 얼굴을 하고도 자주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대가 기억하지 못할 거란 착각을 한 스스로를 어리석게 여겼다. 그리고 굳이 날짜를 당길 필요가 없는 옷들인데 왜 그토록 빨리빨리를 요구했나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에 나 또한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인일 뿐이었다.




이탈리아는 느린 데다가 휴식까지 많이 취한다. 평일 오후 12:30-3:00시 까지는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점심시간 및 낮잠 시간이다. 토요일은 오전까지만 문을 열고 월요일 오후 3시까지 문을 열지 않는다. 그리고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는다. 영업이 끝난 후에는 업무를 받는 일도, 밀린 일을 하는 일도 없이, 절대로 휴식을 취한다. 여름이 되면 한 달씩 도시를 떠나 휴가를 가고,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까지 2-3주 동안 휴가를 갖는다. 이런 문화에 우리는 한국과 비교를 하며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얘네는 왜 맨날 쉬어?”


“맨날 쉬고 나라가 돌아가긴 해?”


“나라가 돌아가는 게 신기하다.”




하지만 이 나라의 속도와 휴식을 경험하며 깨달은 바가 있다.




‘결코 느리게 살면 안 되는 나라이구나.’




기차 연착 시간을 고려해 계획보다 빠른 기차를 타야 했고, 느린 업무를 고려해 서류를 보다 빨리 접수, 문의해야 했으며, 입을 날짜가 정해진 세탁물은 미리미리 맡겨야 했다. 오전에 자칫 느리게 움직였다간 점심시간이 걸려 3시까지 기다려야 했고, 저녁 먹고 상점에 갈 계획을 세웠다가는 마감시간을 넘기기 일 수였다. 한 달 동안 계속될 여름휴가를 고려해 미리미리 필요한 것들을 계획해 움직여야 했고, 느린 업무와 업무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탓에 줄만 서다 씁쓸히 집으로 돌아와야 할 비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오전에 관공서 일을 보러 가는 게 나았다. 찰떡궁합일 거라 호기롭게 출발했던 나라의 속도가 점점 버거워졌다. 어쩌면 한국보다 일찍부터 부지런히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뭐든지 몇 템포 씩 느려 저녁이 돼서야 삶의 의지가 최고조로 오르는 야행성은 이 나라의 비밀을 깨닫고 참담해야 했다.




휴식이 많은 이탈리아는 게을러 보이지만 의외로 카페에서 오전 6:30-7:00시 이면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출근 전 아침 일찍 카페에 들러 간단하게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는다. 또 일찍 조깅을 마친 이들이 커피 한잔을 입에 툭 털어 넣고 가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른 시간에 커피를 간단히 마시며 출근 전 짧은 약속을 가지는 모습은 바쁘게 살아가는 한국의 아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유까지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결코 게으르거나 느리지 않다. 휴식을 아낌없이 누리기 위해 그 나머지를 부지런히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새벽같이 일어나 집 밖을 나서면서도 종종걸음을 멈춰 세울 수 없는 한국은 빠른 게 아니라 급하게 살아가는 중 일 지도 모르겠다. 급한 것과 빠른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고, 빠른 것과 부지런한 것도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까. 또 눈 깜짝할 사이에 오전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며 오후 3시가 되길 기다리는 일을 익숙하게 견디는 나, 이탈리아 휴식을 질투하던 나는 느린 게 아니라 게으른 걸지도 모르겠다. 게으른 것과 느린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고, 느린 것과 여유 있는 것도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까.




나는 느린 게 분명하다. 하지만 게으름을 느림에 빙의시켜 그 둘을 통틀어 '느리다.'라고 말하며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느림과 게으름이 리듬을 주고받으며 죽음의 속도를 완성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마도 급하게 굴러가는 대한민국에서 탈피해 얻고 싶었던 건 출근 전 커피 한 잔과 같은 여유였을 거다.




아침 일찍 어학원을 가던 매일, 정신없이 일어나 카페에서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고 출발하는 유럽 생활의 로망을 뒤로한 채 종종걸음으로 학원을 향했다. 학원으로 가는 길, 막 커피 잔을 내려놓고 카페에서 나오는 이탈리아 사람을 수도 없이 빠르게 지나쳤다. 너는 왜 이렇게 느리냐고 이탈리아 사람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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