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한국과 이탈리아에서 살기.
“얘는 동작은 느린데 성격은 급해.”
허둥허둥 대며 타이밍을 반 박자 늦게 맞추던 나. 그런 나에게 빨리하라는 아우성을 외치던 친구들. 6명이 동시에 시끌벅적 각자의 소리를 내던 중 귀에 쏙 들어온 한마디였다. 오랫동안 그 말을 곱씹었다. 정의 내릴 수 없던 지난 시간 나의 허당 미(美)를 명확하게 표현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잔 사고 많이 치는 애로 유명한 나는 뭐라도 하려고 나서면 주변에서는 무언갈 떨어트릴까, 쏟을까, 흘릴까, 묻힐까 노심초사 그 자체였다. 그런 스스로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에 대해 꽤나 큰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절대 완벽해질 수 없는 성향을 가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벽주의자적인 성향 또한 함께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완벽한 인간은 없고, 인간은 절대로 완벽해질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 사실을 등에 업고 ‘인간적이다.’라고 위안하며 살았다. 하지만 실수를 반복할 때마다 ‘인간적인 것도 정도가 있다.’, ‘이런 내가 싫다.’라는 마음이 불쑥불쑥 지배했으며 스스로를 꽤나 미워도 했다. 어쨌든 ‘동작은 느린데 성격은 급해.’라는 명확한 해석이 ‘나는 왜 이런가.’에 대한 오래된 의문에 명쾌한 실마리가 되었다.
삶의 속도가 타고나는 거라면 나의 타고난 속도는 단언 ‘매우 느림’에 속할 것이다. 지금에야 이십여 년 훈련 끝에 ‘느림’, 때때로 ‘보통 빠르기보다 조금 느림’ 정도로 속도를 맞추어 내지만, 초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빨리, 빨리’를 귀에 딱지 앉도록 들어야 했다.
“빨리 움직여라.”
“빨리 먹어라.”
“빨리 가라.”
타고난 ‘매우 느림’이 살아가기에 빨리빨리의 나라 대한민국은 여간 벅찬 곳이 아닐 수 없었다. 느림보들은 대한민국에 태어남으로써 매 순간 본인들이 느리진 않은지, 본인들 속도가 피해가 가고 있진 않은지 신경을 곤두세운 일상을 살아야 하며, 기다려 주는 상대의 배려에 매번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살아가야 할 숙명을 가졌다. 즉, 느리다는 마음의 짐을 매 순간 짊어지고 급하게 살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느림보로 살아가며 마음만 급해지고 실속은 챙길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탈리아를 경험한 한국인들은 이탈리아 속도에 혀를 내둘렀지만, 느림보가 느림의 나라 이탈리아에 가게 되었을 때는 어쩐지 안도감이 있었다. 가기 전 몰려오는 약간의 두려움을 누르기 위해 걸었던 주문 중 하나가 ‘너의 속도와 닮았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밀라노는 의외로 그리 많이 느리지 않았다. (로마 또는 남부로 갈수록 느리다고 한다.) 음식 나오는 속도도 기다릴 만했고, 계산하는 속도도 참을 만했으며, 관공서 직원들도 업무시간만큼은 쉬지 않고 꾸준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차는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일이 흔했지만 급한 일이 없으면 기다려 줄만 했고, 이탈리아에 가서 처음으로 접한 이탈리아 기관, 어학원, 어학원 수업은 예상과 달리 재깍재깍 제시간에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커피 나오는 속도는 한국보다 빠르기까지 했다. 어쨌든 기대보다 이탈리아 속도는 대부분 더 빨랐다. 그럼에도 보다 천천히 살아도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이곳에서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 없이 타고난 속도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이 곳에는 재촉하는 이도 없었고 맞춰내야 할 조직, 조직의 속도 즉, 학교 커리큘럼이나 과제 또는 시간 내에 해 내야 할 업무 따위도 없었다. 모든 걸 스스로의 리듬에 맞춰 선택할 수 있었다. 그날도 ‘매우 느림’으로 맞춰놓은 모든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밤거리를 ‘매우 느림’으로 걷고 있었다. 속도에 안정감을 느꼈고 모든 게 평화로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더욱더 느린 사람이구나. 그리고 한국 생활이 알게 모르게 많이 버거웠구나.’
그 밤거리에서 친구 말을 떠올렸다.
“얘는 동작은 느린데 성격은 급해”
아무리 빨라지려 노력해도 ‘매우 느림’으로 태어난 사람은 ‘보통 빠르기보다 조금 느림’에서 한계를 만났고, 속도로 인해 피해가 갈까 과속을 범하며 조바심을 내니 잔 사고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 한국에서 꽤 큰 스트레스였던 허당 미(美)의 모든 퍼즐이 맞춰진 거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하며 나만은 나의 본질을 존중하겠노라 다짐하던 밤이었다.
이탈리아 속도를 어느 정도 누려보고 난 뒤부터는 빨리 나오는 커피와 딴짓을 하지 않고 차근차근 일하는 관공서 직원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얘네는 그다지 느리지 않아.’ 그리고 한 가지 의심 또한 하게 되었다. ‘얘네가 느린 게 아니고 우리가 빠른 게 아닐까? 얘네의 속도가 정상인 걸지도 몰라.’
그리고 어느 날 이 속도대로 살겠다 선전 포고하듯 당당히 말했다.
“엄마 이탈리아 사람보다 더 느린 사람이 누군지 알아?”
“누군데?”
“바로 나”